엄마는 말하고 싶던 게 아니었을까?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언제라도 힘들고 외로우면 엄마에게 돌아와.”
엄마가 꿈에 나타났다. 맥락 없는 꿈의 파편들 속에서 엄마의 이 말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잘했어, 너는 할 만큼 다했어. 최선을 다했어. 우리 딸은 언제나 최고였어.”
나는 그제야 못다 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엄마는 네 마음 다 안다고. 어떤 것도 후회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_「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에서
때때로 엇나가고 싶거나 삐뚤어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종종 궤도를 이탈하기도 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어느 길이 맞는지 방향을 찾지 못할 때, 저 길 끝 어딘가에서 언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보였다.
인생이 크고 작은 돌을 계속 던져도 사는 일이 수월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작가에게도 있었다.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내 편을 해줄 엄마가 함께하던 시절이.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 행복했던 것처럼, 자신 또한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행복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포장해서 택시를 타고 달려가던 일. 맛있는 빵집을 발견하면 갓 구운 빵을 들고 설레는 맘으로 엄마를 찾던 일. 명절 선물로 받은 굴비를 엄마 줄 생각에 무거운지 모르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들고 가던 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목돈이 생기면 엄마에게 내밀며 “자, 용돈이야. 맘껏 써!” 하고 같잖은 거드름을 피우던 일. 멋진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표를 예매해서 엄마 아빠의 데이트를 계획하던 일. 첫눈이 내리면 놓치지 말라고 전화를 하던 일.
그 모든 일이 다른 무엇보다 신나고 행복했던 건 엄마가 사랑의 가치를 알아줬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을 함께 좋아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빛나는 날들을 기억한다. 엄마가 선물해준 날들. 그날들이 앞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믿는다.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는 것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때는 꼭 말하고 싶어.
엄마가 온 인생을 바쳐 해낸 일들을, 엄마의 인생을 사랑한다고.”
지금은 멀리 있을지라도 여전히 이어지는 사랑에 대하여
“때때로 엄마의 짓궂은 장난과 쇠털 같은 웃음들을 떠올린다. 인생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 사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타인으로부터 이유 모를 공격을 받았을 때…… 생각하는 것이다. 한번 웃으면 된다고.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닐지 모른다고.”
_「농담 같은 시간들」에서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기는 걸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를 보는 게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엄마를 통해 배웠다. 작가는 상실을 겪으면서 조용히 희망을 품게 됐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보니, 실패하고 좌절당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볼 때면, 그 마음 나도 안다고 가만히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엄마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시간들을 지나오며 조금은 서러웠고 때로는 외로웠다. 하지만 작가는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누군가 없이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는 법을 다시 한번 깨우치고 있다.
엄마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곁에 있어줄 거라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삶이었던 한 사람. 당신이 삶을 견디도록 내내 함께했던 그 사람. 때때로 삶의 무게에 짓눌려도 언제나 당신을 지켜내려 부단히 애썼던 존재를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부디 이 책이, 눈부시게 빛나는 날들을 선물해준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소박한 헌사가 될 수 있기를. 엄마가 그리운 당신에게 따스한 그리움과 위로로 가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