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불행도 가끔씩 오는 일이다
중요한 건 다행이다
프리랜서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TV, 라디오 등 매체에 출연하기도 하는 저자 민용준이 가을을 닮은 이야기를 내놓았다. 저자가 떠나보낸 이야기 속에는 로또로 대박 운을 바라는 마감 노동자로서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빨간 딱지’가 붙은 집에서 살던 아이가 매일 아침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통이 있다. 야심한 밤에 도인을 따라가 공부를 하고, ‘사랑’이라는 말에 “우웩!” 하며 질색하는 커플이 술친구와 함께 떠난 신혼여행처럼 범상치 않은 일화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이 있다. 한편 막대한 채무를 남기고 사라졌다가 10여 년이 지난 뒤 나타난 아버지, 손녀의 남편을 손서라 부른다는 걸 알게 해준 아내의 할머니, 기적을 선사한 반려견 ‘하늘이’의 죽음까지 겹겹의 이별을 마주하며 그가 되새기는 삶에 대한 감회도 있다. 자연스레 찾아오는 절기처럼 적절한 온도로 무르익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덧 책장의 끝이다.
나로부터 떨어진 한 권의 가을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가을에 닿을 수 있길
가을이라는 계절로만 모이는 언어로 한 권의 책을 채우는 것이 마뜩잖게 느껴졌다는 저자는 “내 입장에서의 가을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족을, 광주를, 야구를, 영화를, 죽음을, 결국엔 삶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그 이야기 사이를 오가는 것은 때로는 행복이기도, 때로는 불행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기는 것은 다행이다. 늘 찾아오는 매일을 지켜내다 보면 가끔씩 오는 행복에 기뻐할 수 있고, 불행을 견디며 안도할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중요한 건 늘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빨래가 마르면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매일 청소를 한다는 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잘 놓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청소를 자주 한다는 건 애초에 청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도록 정리된 삶을 살아가는 덕분일 것이다. 결국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리를 찾고 지키는 건 중요하다. 그렇게 삶의 평상과 평정을 지키며 매일의 다행을 이어가야 한다. 잘 치우고, 잘 털어내고, 잘 빨고, 잘 말리면서 가끔씩 오는 행복을 즐기고, 가끔씩 오는 불행을 견디며 매일의 다행을 이어가야 한다. 흐르는 세월은 흐르는 대로 보내고, 돌아오는 계절은 돌아오는 대로 맞으며.
-‘청소와 빨래라는 매일의 다행’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인 ‘가장 멋진 낙조를 떠올릴 것이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가끔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저 사는 것 외에는 사는 방도가 없다는 사실로 되돌아오는 것 말곤 별수가 없다는 걸 그때마다 되짚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저자가 중요하다고 말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아닐까. “삶의 평상과 평정을 지키며 매일의 다행을 이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다짐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특별한 요행보다는 다행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 안에 무르익은, 나만의 가을 이야기를 하나씩 떨어뜨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