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썰 풀고 갑니다!”
어느 젊은 골동품 수집가가 들려주는 슬기로운 골동 생활
스스로를 ‘골동 덕후’, ‘프로 골동러’라고 부르는 한 젊은 수집가의 골동품 수집기 《골동골동한 나날》이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SNS(구 트위터)에서 ‘연근들깨무침’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저자 박영빈은 이 책에서 골동의 매력에 빠져 골동품을 수집하게 된 이야기부터, 그렇게 모은 골동들과 그것들을 수집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맺게 된 인연들과 느꼈던 감정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또한 골동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취미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된 골동과 함께하는 삶을 유쾌한 가락으로, 그러면서도 진심을 담은 진지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실생활에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은 들이지 않는다’는 철칙 아래 저자는 고려청자 다완에 담아 차를 마시고, 원나라 때 백자 향로에 향을 피우고, 일제강점기 때 촛대에 초를 꽂아 불을 밝힌다. 이 책은 골동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90년대생 수집가가 풀어놓는, 골동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가득하다.
“골동이 왜! 뭐! 귀신 안 나와요! 왜 우리 골동품 기를 죽이고 그래요!”
나는 왜 하필 골동에 미쳤는가……
옛 선비들은 어느 하나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벽(癖)’이라고 했다. 단순한 취미나 기호가 아닌, 하나의 대상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와 공부 과정 모두를 즐기는 것이 바로 벽이다. 요즘 말로 하면 ‘덕후(오타쿠)’. 꼭 미디어나 인터넷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수많은 ‘덕후’들을 볼 수 있다. 역덕(역사 덕후), 밀덕(밀리터리 덕후), 철덕(철도 덕후) 등등…… 그리고 여기 골동 덕후도 있다.
골동벽에 빠진 저자는 스스로를 ‘골동 덕후’라고 부른다. 평소에도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다가 문득 방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골동품을 집어 들고 ‘골동멍’을 때리기도 하고, 아는 골동집에 귀한 물건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먼 데라도 득달같이 달려간다. 말 그대로 ‘덕후’의 습벽(習癖)이다.
저자는 왜 하필 골동에 빠졌을까? ‘골동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냐?’, ‘대체 왜 골동이냐?’는 주위의 질문에 저자는 답한다. “옛것을 이어서 사용하는 매력”이 있고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는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골동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1장에서는 골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 즉 어떤 물건을 골동이라 부르는지 그 정의와 범위를 짚고 간다. 흔히 골동의 기준이 뭐냐는 물음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님님, 이거 골동품이죠?!”
“보자… 신작이네. 한 60년대?”
“60년대… 뭐야, 70년 넘었네! 골동품이잖아, 그럼!”
“에헤이! 100년 안 됐잖아! 그럼 많이 쳐봤자 빈.티.지!”
“그게 뭔데, 이 덕후야….”(22쪽)
저자의 기준, 그리고 골동업계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100년 이상 된 물건은 골동으로, 50년 이상은 빈티지, 그 이하는 모두 ‘신작’으로 분류된다. 물론 신작에 속하는 기물들이나 현대 작가들의 작품 중에도 명작이 많지만, 그럼에도 골동과 빈티지 주변을 항상 기웃거리는 것은 그 시간의 흐름에 담긴 이야기와 모습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1장과 2장 사이, ‘여기서 잠깐, 골동 정리 좀 하고 갑시다!’ 꼭지에서는 저자가 애정을 갖고 모으는 유물들과 골동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들을 소개한다. 차 생활을 즐기는 저자가 특히 애호하는 ‘다관(茶罐, 찻주전자)’, 매부리바다거북의 등딱지인 ‘대모(玳瑁)’와 반점이 있는 대나무인 ‘반죽(斑竹)’ 같은 재료, ‘장황(粧潢)’ 같은 장식 기법이나 ‘킨츠기(金継ぎ)’ 같은 수리 기법에 대한 설명과 상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2장에서는 골동을 수집하면서 겪은 일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고 자랑하고 싶은(이거 중요) 몇몇 썰”(90쪽)을 풀어본다. 정말 우연찮게 맞닥뜨린 옛 걸작들, 중고장터 앱에 올라온 골동품 사진 속 일부만 아주 조그맣게 찍힌 따라보살상을 발견한 일, 진귀한 조선시대 후령통을 “쥐 뒷걸음치다 소 잡은 격”으로 운 좋게 손에 넣은 이야기 등 골동 수집 과정에서 실제로 겪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특히 도난당한 산신탱을 환수하고자 모금을 진행한 일은 2023년 당시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 불교 언론에도 기사가 실린 바 있다.
3장에서는 골동으로 엮인 여러 인연과 골동을 곁에 두고 사는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찻자리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함께 모여 조선 초기 의복을 재현하거나 진짜 대모로 거문고를 장식하는 등 전통공예와 옛것에 대한 사랑으로 뭉친 사람들, 그리고 자주 찾고 종종 조언을 얻기도 하는 단골 골동가게 사장님들도 저자에겐 소중한 인연이다.
저자 스스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라고 밝힌 향로나 향꽂이 같은 향도구들과 함께하는 일상, 밤마다 저자의 머리 위에 매달려서 조용히 빛을 내고 있는 옥등잔 이야기, 마음에 드는 갓과 머리에 맞는 탕건을 구하려고 뛰어다닌 일, 요리를 하면서 500년 된 그릇으로 국간을 맞추던 동생과의 에피소드 등 ‘골동골동한 나날’이라는 제목에 맞는 일화들도 실려있다. 그 밖에 골동을 구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판매처와 각각의 장단점, 가짜 구별하는 눈을 키우는 법, 유물에 걸맞은 수리 기법 등 골동 또는 골동 수집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도 볼 수 있다.
“굴러다니는 골동들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이리저리 뒹굴어 본다.”
일상 속에서 골동과 함께하며 호흡하는 시간들
책의 첫 번째 글 ‘왜 하필 골동품이야?: 생각보다 평범한 취민데요…’에서 저자는 ‘골동품 수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오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왜 골동품이 낯설게, 또는 어렵게 느껴질까?’라는 의문에, ‘골동 수집=부자 취미’라는 이미지가 더해진 게 사람들이 골동을 어렵게 보게 된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을 밝힌다. 하지만 저자에게 골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상을 함께하는 ‘생활용품’이다. “생활 속에서 실사용할 수 없으면 들이지 않는다”(14쪽)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 고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대접과 잔과 접시를 실제 식기로 쓰고, 평소에 사용하는 촛대와 향로와 꽃병도 조선, 원나라, 심지어 당나라 때 것이다.
이렇게 1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흔적이 담긴 골동품을 사랑하는 저자도 무작정 진품, 옛것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보기 드문 부채인 죽피선(竹皮扇)을 구했을 때는 실사용을 위해 부분 수리를 감행했으며, “지금 만들어진 가짜나 재현품들이 몇백 년이 지나 그 나름의 골동품으로 대접받을 날이 분명 있을 것”(264쪽)이라거나, 한 꼭지를 할애해 “수리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설파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수리를 마치고 다시 바라보게 되는 기물들은 참 각별하다. 수리를 통해 온전한 모습을 찾는 것을 보면 기물에 새로운 힘이 생기는 느낌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불완전한 것은 불완전한 대로의 맛이 있으니 그냥 두어도 좋지 않나 하지만, 그래도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기물들을 보면 마치 그것들이 나에게 “나는 이제 준비됐어! 이제 다시 가보자!” 하고 말을 거는 것 같다. 본래의 옛 모습과 새롭게 수리된 부분이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가 또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오는 것이다.(289쪽)
물건을 본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는 ‘전용(轉用)’ 또한 저자가 추구하는 골동 생활의 포인트 중 하나다. 벼루를 찻주전자 받침인 ‘호승(壺承)’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이는 물건의 경제적 가치나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그 물건에 깃든 의미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옛 전통을 따르되 그것을 새롭게 만들고 적용하는 것, 저자는 이를 “근본을 찾는 후레생활”(49쪽)이라고 말한다.
저자에게 골동은 축재 수단도, 단순한 장식품도 아니다. ‘고미술’, ‘앤티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그보다는, 좀 더 친숙하고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느낌이 드는 ‘골동’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동을 모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사랑하는 기물들이 전해오면서 혹은 수집되면서 함께 실려 오는 이야기들을 문자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347쪽)다는 저자 박영빈의 일상은 앞으로도 쭉 골동과 함께할 것이다.
골동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골동골동한 나날을 보낸다는 건, 단순히 옛 물건들을 진열해 두고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기물들이 현대의 일상 속에 사용되며 나와 같이 호흡하는 시간들을 두고 나는 골동골동한 나날이라 부른다.(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