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엔 때가 있다
키 크는 것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고요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의 빈 대기실에 인기척이 들린다. 익숙한 이름을 단 병원에 반가워 왔다는 10여 년도 더 된 환자의 보호자는 술술 잘 풀리라며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들고 있다. 손녀 손을 잡고 들어온 할머니 한 분은 30년 전 기억을 되살리며 고마움에 손을 잡고는 한참을 흔든다. 아이의 병치레에 입원을 밥 먹듯이 하던 가족은 훌쩍 자란 아이와 함께 와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한다.
공공병원에서 33년을 일하다 개원을 하고 다시 3년이 흘렀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정명희 수필가의 글에는 긴 병원 생활만큼이나 수많은 이들과의 인연이 녹아 있다. 환자와 그 보호자, 의원 근처 시장의 상인, 어릴 적 단골 환자였다는 파견 실습생에 건너편 병원에 근무하는 선배까지. 오래전 일도 잊지 않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인연이 된 것은 작가의 진심이 전해져서이리라.
작가는 무슨 검사든지 겁부터 내고 소동을 피우는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준다. 피를 안 뽑으려고 우는 아이들은 몸속 혈액의 총량에 대해 설명해 주면 신기해하며 용기를 내 스스로 팔을 내민다. 때로는 너무도 의젓해 놀라고, 쿠션을 끌어안으며 고통을 참아내는 애어른 같은 모습에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치료차 온 병원에서 친구가 되거나 보호자들이 서로의 선배가 되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는 우연한 인연의 힘이 느껴진다.
『잘한다, 잘한다, 자란다』는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는 만큼 잘 자라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수필집이다. 키가 크는 것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때가 있다. 작가는 때에 맞춰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며 바쁘게 일하면서도 본인의 세계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필가로서 병원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을 기록하고, 텃밭에서 땀 흘려 일하며 자연과 계절을 느낀다. 독서마라톤에 참가해 책에서 나아갈 길을 찾는다.
작가는 명절 당직 근무에 선뜻 동참해 주는 직원들과 장시간 대기에도 배려와 인내로 기다려 주는 아이와 부모들의 선량한 모습에서도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나가는 작은 진료실 속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으니 진료실 밖으로 향해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