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와 열린 사고를 통한 근대성 비판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열며
문학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수필가는 시대와 역사의 증언자여야 할 것이다. 인간성 상실, 자연 파괴, 사회적 불안과 공포 등 총체적 위기에 처한 현재, 경제적 합리성만이 강조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이제 더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간의 비인간화가 인성 때문이라고 보는 데는 다른 생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도구적’, ‘정합적 이성’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구조가 비인간화를 불러온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조직과 구조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도구적 이성에만 빠져있는 인간이 찰나적 본성을 등한시하는 단적인 예는 과학기술의 맹목적 추종을 들 수 있다. 이른바 생태주의에 관한 관심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인간 의식에서부터 생활과 사회구조에 이르기까지 생태친화적인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 생태적 합리성에 근거한 대안적 세계관 모색과 관련해, 특히 우리 전통문화와 생활양식 속에 오늘날 새롭게 되살려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 수필가 박경애의 주된 관심사이다.
‘의심’하고 ‘회의’할 수 있는 이성적 힘이 상실될 때 인간은 권력과 그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이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만 좇는 ‘정합적 이성’ 중심의 인간과 사회는 양심과 도덕성을 잃어 ‘비인간화’의 극에 달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 즉 ‘비판적 이성’을 도외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내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러한 정합적 이성주의자들이다. 그것은 박경애의 수필 속, 현대사회와 문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효율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모든 가치를 도외시하는 산업구조, 기술 생산의 효율성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과학기술 논리 등이 그것이다. 박경애의 수필은 바로 이 같은 문제점을 공존과 상생의 미학을 통해 찾아내고 있다. 박경애의 수필은 모든 수필이 하나 같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인간화의 한 예가 될 도구적 이성에 빠진 현대인의 비인간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한마디로 생태수필이다.
Ⅱ. 생태수필이란?
생태수필의 존재 의미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전체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의 핵심에 있는 생명의 개념, 즉 생태계 중에서 생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데 있다. 따라서 생태수필이란 생명 자체를 노래함으로써 생명의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는 수필이며,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가치와 위상, 생명 고양의 조건을 살피어 그 중요성을 문학적 상상력 속에 구체화하는 수필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이를 달리 자연 친화적 수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하겠다. 박경애의 생태수필은 주로 고발, 발견, 전망 또는 신뢰를 지향한다. 고발의 장은 생태계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의 참상과 그로 인한 생태적 인간 정신의 상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발견의 장은 자연의 근본이자 바탕인 초록의 현장을 찾아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박경애에게 있어서 자연의 발견은 원시적 삶을 의미하며,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뜻한다. 생명의 발견 안에는 유년의 추억이 있고, 꿈이 나래를 펴고 있다. 그녀는 초록의 체온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발견해 내고자 한다. 전망 또는 신뢰의 공간은 수필가 고유의 감수성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생태 사회를 보여주어 인류에게 그런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상상력의 보고를 의미한다. 문학적 상상력과 생태학적 인식으로 또 하나의 희망이 될 지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이다. 따라서 박경애의 수필집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인간중심주의,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 문학을 제시한다고 하겠다.
Ⅲ. 펼치며
가. 생태적 합리성과 탈 소재주의
현대 산업사회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강렬한 흡인력과 공감대를 지닌 수필을 요청한다. 뉴턴이 말한 수필의 보편성이야말로 소재의 다양성에 의미를 둔다고 하겠다. 박경애의 수필은 생태수필을 넘어 네 가지 범주로 그 특성이 확산하지만, 그녀의 시그니처 담론은 생태수필이 최우선이다. 문학적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편중적인 소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녀는 생태수필 외에도 자기 삶과 관련된 자조적 수필 등 다양성을 품어왔다. 틸 다이가 상상을 ‘소재를 변형시켜 새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라고 한 것은 소재의 확장이 수필 영역의 확대와 직결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박경애는 그동안 멀리해온 ‘바다’ 소재의 접근성을 요구받는다고 하겠다. 위의 측면에서 박경애가 하나뿐인 지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태주의’를 내세우면서 ‘바다’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바다는 환경인 동시에 문화다. 바다를 함께 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바다는 그들의 치열한 삶의 일부분이고, 사람들은 도전과 응전 속에서도 경외하고 적응하며 삶의 순리를 따르기도 하였다. 미래로 가고 있는 수필 속에서 바다는 중대한 화두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 물의 총합으로 표징되는 바다, 생명의 원천으로 화합과 끌어안음의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하거나 주요 대상물로 하는 수필은 사람도 등장하지만, 주역을 담당한 바다라는 무대에 내포된다. 우리나라도 반도의 삼면이 바다를 끼고 있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바다를 읊은 노래가 많다. 우리 시가의 최초 작품이라고 말해지는 ‘구지가’나 ‘공무도하가’가 바다 또는 물을 배경으로 한 것부터 그렇다. 그러나 고대 시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에 투영된 바다의 모습이 한결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물론이다. 이 글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중략)
Ⅳ. 닫으며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우주를 살피는 것은 곧 자아를 찾는 작업이다. 수필은 또한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눈으로 응시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자아 성찰은 바로 자기 내면의 자아를 바르게 세우는 작업인 것이다. 작가가 ‘떠남’을 꿈꾸는 것은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자유에 대한 가치와 주체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고양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수필집은 뿌리내릴 수 없는 예술가의 자유 정신을 문학적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하겠다. 고행 속에서 삶의 진가를 확인케 하는 그 역설적인 활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고요하고 평온한 정적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떠남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작가의 떠남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붓다의 얼굴을 닮기 위해, 좁혀지는 가슴을 넓히려 부단히 일상을 탈출하는 것이다. 마음이라도 맞는 사람을 만나 자연에 동화되어 차 한잔할 수 있는 여유, 이것이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인간은 떠나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는가. 떠남을 통해 우주와 소통하면 구도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오늘도 떠남을 기대한다.
자연에 대한 꿈과 동경은 바로 중심 바깥으로 던져진 존재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삶의 변증인 것이다. 그녀의 수필이 주는 맛은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길어 올려진 언어가 진정성의 분위기를 띤다는 데 있다. 일상을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용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행위는 대상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식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그녀의 인식 대상과 행위가 바로 사회 현실이고 역사 현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에 다뤄진 작품들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환경의 관점이 아닌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동일한 가치선 상에 있다는 생태의 관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은 수필가의 의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경애 수필이 생태 문학의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이제 수필은 그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학에서 인식이 없다는 것은 영혼이 빠져나간 신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태 문제를 주제 의식으로 삼고, 생태 문학의 카테고리 속에서 수필가의 관심이 생명을 향하는 것은 작가적 사명을 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