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파동성, 중층구조의 예술성
권대근
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열며
문학은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는,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추측이나 상상, 아니면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 당연히 이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추리와 당위성에 의거한 개연성과 핍진성을 갖는 서술을 말한다. 문체상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그럴듯하게,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학이다. 따라서 문학은 역사보다 훨씬 진지하며 철학적인 진리성에 가까운 것을 추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최순덕 수필의 가치성이란, 수필에 예술성을 주기 위해 중층구조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순리적 운명관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감동성도 최순덕 수필의 가치를 드높이는 인자다. 그것은 작가의 내심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 장치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문학으로서 수필이다. 문학이 보다 깊은 철학일 때 우리는 세계인과 만난다. 예술수필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순덕의 수필에서 세련된 문학성의 향기가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뉴턴역학에 기초한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에 자리를 내준 양자혁명 동안 발생한 패러다임 전환을 ‘사실을 사실대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전통수필’에서 ‘수필은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한다는 본격수필’로 전환해서,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최순덕 수필 분석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이 전환은 오랜 결정론적 세계관에 도전하고 파동입자이중성, 불확실성 및 양자 중첩과 같은 개념을 양자역학에 도입했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여섯 가지, 양자도약, 양자얽힘, 양자중첩, 관찰자효과, 불확정성원리, 상보성원리 등 양자혁명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놀라운 과학적 발전과 기술 혁신의 발판을 마련했다. 본격수필이론도 양자역학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교술이라는 전통수필 이론에 도전하고, 기존 수필에 대한 개념에서 전환하여 수필적 허구와 중층구조와 존재론적 의미화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현대수필의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최순덕 수필집을 읽고 나면, 필마의 기운이 주는 뿌듯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주제의식을 제재와 연결시켜내는 상관화 작업이 수필을 문예화하는 데 중요한데, 지금까지 최순덕은 이런 일을 잘 해내고 있다. 그녀의 인지시스템으로 들어온 제 물상은 의미화 작업을 거쳐 옹골찬 미학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내온 사십여 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중층구조미학의 토대 위에서 빛나는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순덕의 눈은 확실히 남다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보아야 할 것을 찾아 조리개를 맞추는 데 남다른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믿음직한 글쓰기를 수필의 문학성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의 하나로 볼 때, 최순덕 수필집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Ⅱ. 펼치며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일체 무관심하거나 초연한 상태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한 부분이며,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역사적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항 속에 들어와 있는 물이 역사적 시대적 상황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최순덕의 수필은 바로 인간의 존재 조건, 실존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순덕은 2017년도 수필 부문 한국해양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다. 무엇보다도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재료를 선택하는 데서 좌우된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가 선택한 한 권 분량의 수필들은 모두 독자로 하여금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방식에 대해 되짚어보게 하는 호소력이 짙은 작품이다. 작가의 시선은 이름도 빛도 없이 따스한 온기를 향기처럼 퍼뜨려 세상을 꽃피우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어, 더욱 이 수필의 가치를 드높이게 한다.
칸트에 의하면 예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논의 또는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의 미학적 또는 심미적 취향은 극과 극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것으로써, 제시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공통된 그리고 정당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 위에 성립한다. 이와 같은 가정 위에서 최순덕 수필의 즐거운 가치평가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순명의식과 솔직함, 작품에 어떻게든 문학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문학정신에서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최순덕이 추구하는 가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성실성이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포커스를 맞추면 대충 최순덕의 세계관과 일상 철학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이 해설을 통해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으로 최순덕 수필의 가치와 마주했으면 한다. 작품 속 화자나 주인공이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에 솔직하게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한 편의 수필을 읽는 일은 작가의 수필적 서사를 거쳐 결국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수필이라는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다 보면,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사는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수필집이 멋진 기차여행을 선사하는 소중한 차표가 여러분을 양자의 세계로 안내해 줄 것이다.
(중략)
Ⅲ. 나가며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파동-입자 이중성이라면, 수필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와 제재의 이중층위다. 최순덕 수필은 입자와 파동이란 양자역학의 이중구조를 통하여 문학적 성취를 견인한 전략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보이는 것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양자역학은 증명한다. 제재 속에 주제가 있고, 주제 속에 제재가 있다는 것은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여섯 가지 중 ‘양자얽힘’에 해당한다. 수필은 주제와 제재를 나누어 생각하면 잡문이 된다. 최순덕의 수필은 주제와 제재가 얽혀 있다. 이는 수필이 주제나 제재의 문학이 아니라 ‘주제와 제재의 문학’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 양자의 속성이 미시세계 물질의 속성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물질의 속성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우리 인생 또한 그런 원리로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을 최순덕 수필은 잘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최순덕은 부드러운 곡선의 안식처가 있는 작가다. 최순덕 수필집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분 글 참 잘 쓴다.’였다. 본격수필이론을 접한 후라서 그런지 수필의 발전이 눈에 두드러진다. 최순덕 수필들은 맑고 잔잔한 샘물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수필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감이 있다. 깊은 깨달음의 경지가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고 은은한 향취가 풍겨나고 삶의 진솔한 모습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그녀는 깊은 의식과 상념으로 감성을 체계적으로 정리 압축하고,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간의 삶에 농축된 비의를 예리하게 포착해서 살피고 있다. 이는 평소에 영혼과 마음을 늘상 갈고 닦은 까닭이다.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지혜가 좋은 수필집이 되도록 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덧붙인다.
자신이 수필가이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사람과 수필을 씀으로써 수필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르다. 필자가 강의를 하면서 지켜본 바, 최순덕은 수필가이기 때문에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필을 씀으로써 수필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다. 수필을 씀으로써 자기를 위무하고, 나아가 수필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려는 구도적인 자세로 인해 그녀의 수필은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문학보다 깊은 철학적 사유와 순명주의,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되기 정신 속에 생명의 참된 의미와 본격수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수필을 통해 최순덕은 우리에게 전해준다. 최순덕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기호체계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하는 수필가가 결코 아니다. 수필이 문학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수필의 문학적 물음이 나를 넘어 사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수필을 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