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을 헤아리는 언어를 벼리고
겹겹의 ‘사유’에 닿는 기억을 담금질하며
글로 엮어온 생-존재의 의미를 새기다
“말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임을, 태어나 사라지고 바뀌는 그 생성과 변화가 곧 우리 삶의 구체적인 역사와 더불은 것임을 깨닫는다. […] 그 말들의 삶을 사전과 기록으로 충실하게 정리해두는 것 또한 우리 삶-살이의 사료가 될 것도 분명하다. 말들에 스민 말의 역사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체험 기록이 되리라.”(75쪽)
저자는 “늙고 낡은 정신에 다가오는 책들”을 그저 제멋대로 읽고 자유로운 잡문 쓰기로 이어갔다 겸허하게 말하지만, 책을 펼치면 “이편의 한계를 벗어나 ‘저편’의 의식을 열어보려”는 꾸준한 노력의 소산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평생 기자적 관점에서 “세상을 글로 개찰하며 사람과 삶, 세계와 세상의 움직임들에 말거리를 이어”(155쪽)온 그에게 “글쓰기는 사유”라는 삶의 태도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특히 이청준의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 읽기와 가히 언어폭력의 난장이라 불러야 할 요즘 정치 현실의 교차를 필두로, 과거 검열과 금서의 시대를 지나 언론, 출판의 자유를 획득한 지금의 현저한 대비는 물론이요, 서술의 자유로움에 기댄 기사 문체의 힘과 매력들이 빛을 발하는 논픽션 저술에 대한 상찬과 어쩌면 인류문명의 획기적 변혁의 계기로 작용할 새로운 언어생성모델 챗GPT의 등장을 앞에 둔 당혹스러운 기대감까지, 평생 언어를 다듬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온 이답게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말과 언어-문자의 변화 양상에서 찾고 묻는다.
한편, 정명환, 서광선, 이어령, 김동길, 김지하, 방혜자, 조세희 선생 등 전쟁과 변란, 갈등과 혼란으로 암울했던 지난 시절, 팽만한 시대의 어둠을 걷고 우리들 지적 정서를 다듬는 일을 고민했던 ‘80대 정신들’의 잇달은 작고 소식은 그들을 존경해왔던 저자에게 적잖은 아득함과 허망함을 안긴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책을 읽는 일상을 지속하면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회상의 무거움을 “그분들이 비운 자리에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정신들이 들어설 것”(93쪽)이란 희망으로 돌려 새긴다. 팔십 후반 속절없는 노쇠의 자리에서 “굳이 회오나 겸손을 새삼 끌어들일 필요 없이” 세월과 변화를 구경하며 “조용히 순명하는 것, 그 뜻과 형상을 이해 못 하는 대로 바라보고 눈으로나마 챙기는 것”에 충실하고 싶다는 저자의 진솔한 소망이 정일(靜逸)한 고독감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