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이 보낸 찬사★★★★
“한 인간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래도록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 기록” ─ 신혜우(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파브르의 책이 우리에게 자연을 사랑할 용기를 주었듯, 이 책은 파브르 본인이 관찰 대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 이소영(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
1. 파브르의 정신을 정확하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책
─ ‘자연의 경전’과도 같은 파브르의 삶과 작품을 생생하게 담다
─ 오래도록 자기만의 빛으로 반짝였던 한 과학자의 인생
파브르가 세상을 떠나고 약 110년이 지났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대한민국에 출간되는 지금까지 파브르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가가 부유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정신과 업적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말해준다. 과묵하면서도 강직한 성격 탓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데 늘 조심스러웠던 파브르는 오랫동안 뜬 소문들에 침묵해왔다. 1907년 여름, 아내와 함께 파브르의 집이자 연구실인 ‘아르마스’에 방문해 그의 제자가 된 이 책의 저자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는 파브르에 대한 세간의 오해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느꼈고 이 책을 작업하기에 이른다. 그는 파브르의 원고와 서신뿐만 아니라 동생인 프레데릭 파브르에게 제공받은 가족의 모든 기록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 덕에 이 책은 파브르 사후에도 국내외 할 것 없이 파브르에 대한 주요 참고 문헌으로서 인용되어왔다.
책 속의 모든 문장은 파브르가 손수 검토했으며, 직접 쓴 서문은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삶의 대부분을 생명의 경이로움을 밝히는 데 보낸 파브르는 우리가 익히 아는 과학자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학계의 권위와 명성을 누리며 이론을 발전시키기보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학생들과 함께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온 몸으로 자연을 체험했고,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타인의 목소리에 쉬이 반응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관찰과 경험으로 증거에 기반한 연구를 이어간 파브르의 결론이 실제로 진실에 가까웠다는 점은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에 극도로 신중했던 파브르에 대해 가장 심도 있고 생생한 이야기는 물론, 그의 삶에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줬던 동물과 식물, 자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파브르 저작의 핵심적인 부분을 충실하게 인용한 덕에 그의 아름다운 문장 또한 엿볼 수 있다. 시공간과 연령대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장 앙리 파브르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경외의 태도로 끈기 있게 관찰하는 태도, 명성과 권력보다는 자연이 준 가치 아래 올곧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그의 자연과학자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평가는 단 한 줄도 파브르의 동의 없이 쓰인 것이 없으며, 대부분 파브르의 정신이 직접적으로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되도록 파브르가 직접 말하게 하려고 했다. 이미 파브르는 박물학자의 탄생과 자신의 생각이 발전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파브르 곤충기》의 여러 장에 걸쳐 “홀로 있기 좋아하는 학생의 전기”를 그려내지 않았던가? 대체로 나는 일련의 사건을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말만 소개했다.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같은 표현으로 반복하거나 파브르가 스스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을 다른 표현 또는 덜 만족스러운 표현으로 반복하는 건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브르의 말을 듣고 파브르의 기억에 호소하고 그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제자들의 자취를 되짚으면서 그가 남긴 공백을 메우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2. 최초로 자연을 다르게 바라본 관찰자
─ 해부학적인 생명 이해를 뛰어넘은 상황과 맥락의 과학
─ 살아 있는 자연을 드러내 새로운 우주의 서사를 만들어내다
파브르는 아이들을 위한 과학 교재 집필에 10여 년을 헌신했다. 그동안 지루하고 건조한 문장만으로 가득했던 자연사 교과서는 파브르만의 시선으로 새로이 거듭났다. 친절하고 생생한 문장은 특히 식물학을 흥미로운 학문으로 만들었고, “비교 대상이 없는 시리즈인 보석 같은 《파브르 식물기》”(115쪽) 또한 이 시기에 나왔다.
식물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곤충 이야기를 파브르의 삶에서 빼놓을 순 없다. 파브르 이전에도 프랑스의 과학자 르네 레오뮈르 등 곤충을 연구한 학자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레오뮈르의 연구는 “지루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명명법에 갇혀”(300쪽) 있었고, 파브르는 이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면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했다.”(169쪽) 그 뒤로 프랑스 곤충학의 거장 레옹 뒤푸르가 등장했지만 그는 곤충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쏟았고, 친밀하게 관계를 맺어야만 알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곤충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브르는 ‘곤충학의 원로’로 알려진 뒤푸르의 관찰마저 “얼마나 불완전하고 제대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확인”(81쪽)하고서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게 된다.
앞선 과학자들과 달리 수십 년간 섬세하고도 사려 깊게 자연을 관찰해온 파브르는 생명이 “해부학적 특성이 아니라 성향이나 노동의 종류에 따라 결정”(205쪽)된다고 말한다. 파브르는 그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현미경을 통해 생명을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종, 속, 과, 목을 분류하고 사체를 해부해서 능력을 유추해온 태도로는 제대로 된 생명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각 개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생명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브르의 이 결론은 오늘날에서야 발전한 생명 윤리 및 동식물학에 하나의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동물의 지능과 행동, 식물의 생리 등을 인간 중심적으로 측량해온 역사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생명의 경이를 느낄 새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저자 르그로는 말한다. “새로운 파브르가 세상에 등장하기까지는 분명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307쪽)라고. 과연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파브르가 등장할 만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타고난 성정, 그가 몸담은 과학이라는 문화, 백과사전에 가까운 지식, 거의 10년 동안 교재를 집필하며 끊임없이 최신 상태로 보완한 교육 커리큘럼에 대한 높은 이해는 파브르가 자신의 연구에 한계 없이 깊게 침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에 더해 작은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습성을 이해하고 이를 “광활한 우주와 연결된 신비로운 맥락”(157쪽)으로서 이해하는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의 능력은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감히 도달할 수 없다. 관찰의 진정한 기술이자 재능은 “늘 깨어 있는 지성”(157쪽)이다. “진실에 닿을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몰두하려는 열망”(157쪽)은 그의 삶을 굳건히 지탱해 지금까지도 세상과 공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구조는 능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관은 그 기능에 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렌즈와 현미경에 정신을 빼앗기도록 내버려 두자. 어쩌면 이들은 한가하게 이것 또는 저것, 종, 속, 과, 목에 관한 어마어마한 세부 사항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문제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감지하기 힘든 연구를 수행하고 미세한 변형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무수히 많은 페이지를 쓸 수도 있다. 그러느라 무엇이 진짜 경이로운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
천재의 특권인 직감을 자랑하는 프로방스 가수가 아름다운 가사로 이런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다.
오! 메스를 들고 있는 바보들
죽음을 찾아보며, 그들은 안다고 생각하지
벌의 미덕과 벌집의 비밀을
─ 8장 〈본능의 기적〉 중에서
3. 위대한 과학자는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 노동자와 소작농, 여성 들에게도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다
─ 세상과 함께 무르익은 인생으로 던지는 질문
파브르에게는 의외의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1년간의 시의원 활동이다. 그의 관심은 파벌 간의 알력 싸움에서 이겨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미래와 발전한 인류에 있었다.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몰두하는 세속적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오로지 배움을 위해서 일하고, 또 일했다.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배움의 기회가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노동자와 소작농, 여성 들에게도 차별 없이 강의를 제공했다.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배움의 장이었다.
하지만 파브르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또한 함께 늘어났다. 사람들은 학계의 권위 있는 이론이 아닌 오로지 관찰에서 증거를 얻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파브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소녀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평등한 교육자로서의 행보를 두고선 “반체제 인사”(105쪽), “이단이자 수치”(106쪽)라고 말했다. 혐오감에 휩싸인 파브르는 사람들과 멀어지기 위해 오랑주로 은퇴하게 된다. 파브르는 자신만의 “에덴”(140쪽)을 찾아 정착하게 되었다.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한지, 관찰을 기반으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해온 과학자마저도 이토록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떻게 억압받아왔는지, 그럼에도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 그 관찰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위대한 관찰자는 삶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책을 읽으며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감상과 질문 들은 독자에게도 자연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리게 한다.
이 책에 도움을 준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생명체가 진정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직관뿐이다.”(158쪽) 생명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관찰이라는 행위로 죽어 있는 학문이 아닌 살아 있는 학문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이 땅 위에 살려낸 파브르의 삶과 작품을 감히 “자연의 경전”(352쪽)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다. 파브르의 말과 삶이 담긴 이 책이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희망찬 메시지가 되어 “기적과 시로 가득한 세계”(31쪽)가 모두에게 펼쳐지길 바란다.
파브르는 진보의 연속성을 단언했다. 더 조화롭고 덜 잔인한 규범에 지배되는 더 낫고 덜 잔인한 미래, 더 완벽한 인류애를 믿었다. …… 그는 가장 놀라운 관점으로 가장 소박한 생명체를 바라봤다. 아주 하찮은 곤충의 몸이 갑자기 초월적인 비밀이 되어 인간 영혼의 심연을 밝히거나 별을 엿보게 했다. 비록 파브르의 연구는 진화론자의 이론과 모순되지만, 모든 창조물은 점진적인 진보를 향해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는 똑같은 교훈적 결론으로 끝난다.
─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