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와 환상, 추리물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독보적 소설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김희선의 ‘미스터리’ 서평집 『너는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김희선은 『무한의 책』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등의 소설을 통해 타임워프, 외계인 침공, 미제 살인 사건 등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기묘하고 생생한 세계관을 선보였다. 『너는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는 소설가 김희선이 사랑하는 ‘미스터리 책’ 18권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민음사 문학 잡지 《릿터》에 2년 반 동안 연재되며 다정하고도 으스스한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김희선의 글은 장르로서의 미스터리물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라는 미스터리를 탐구하는 데 실마리가 되어 줄 과학책을 함께 다룬다. 거대하고 흥미진진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준비가 된 독자들이라면 일단 이 책을 펼쳐 보자. 무한한 미스터리 세계를 탐험하는 데 더없이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책을 덮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작가의 당부 한마디,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 것!
미스터리는 재미있고, 미스터리는 지혜를 준다
소설가 김희선에게 ‘미스터리’는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최초의 독서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생생하게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감각이다. 또래 친구가 많지 않은 동네,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홀로 세계여행전집을 읽던 어린아이에게는 집 앞 골목만큼이나 책 속 세계에 대한 실감이 넘쳐났다. 작가가 된 지금, 이제는 추리소설을 읽었다 하면 범인을 지목할 수 있게 된 소설가 김희선은 여전히 책 속 세계를 현실만큼 낱낱이 감각한다. 김희선은 묻는다. 혼령이 스르르 출몰하는 소설 세계와 칼을 든 살인마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현실 세계 중 더 무섭고 불가사의한 곳이 과연 어디겠느냐고. 누가 보아도 수상해 보이는 밀실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김희선은 ‘인물들이 미스터리를 많이 읽었다면 섣불리 그런 데 들어가지 않을 텐데.’ 하고 중얼거린다. 미스터리로부터 배운 현실 감각은 소설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작용한다. 미스터리에게서 지혜를 빌려 보자. 발걸음은 조금 더 신중해지되, 머릿속에서는 재미있는 상상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미스터리 소설 속, 또 한 명의 탐정 되기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감상할 때 우리는 흔히 소설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소설을 겪어 낸다. 작가가 마련해 둔 트릭, 인물들의 사정, 세계의 특이점 등 일상에서는 겪기 힘든 스펙터클을 소설을 통해 대신 체험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김희선에게 미스터리 읽기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작품과 호흡하는 일이다. 탐정이 ‘범인은 바로 너야!’라고 지목했을 때, ‘탐정이 뭐길래 우리는 탐정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걸까?’ 하고 묻거나, ‘곧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하여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사건의 진위를 밝히려고 나설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고 자문하는 식이다. 훌륭한 질문자인 김희선을 따라 미스터리 세계를 거닐며 우리는 또 한 명의 탐정이 된다. 아늑한 방 안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쳐 드는 것만으로 탐정이 될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탐정에게 필요한 논거를 수집하기
탐정이 되어 진실을 파헤칠 논리 체계를 완성하려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는 필수 덕목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인 세계를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김희선은 이에 도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과학전문기자 윤신영에 따르면 김희선은 “논증할 수 있지만, 과학으로 검증할 수 없는, 철학자 마시모 피글리우치가 ‘거의 과학’이라고 분류한 영역의 다양한 가설을 종횡으로 건드린다.” 『너는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장과 3장에 수록된 책들은 ‘인간에 앞서 1억 5천만 년이나 이어졌던 공룡 시대에, 어쩌면 챗지피티보다도 발달한 초지능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선사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던 사람으로 하여금 문득 스스로를 우주 먼지의 일시적 결합체로 여기도록 만들기도 하며, 거대한 고래의 사체를 양분 삼아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심해의 풍경을 그려 보게도 한다. 뜻밖의 시선을 획득한 우리는 세계를 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가 되길 바란다는 김희선은 확신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책의 길을 따라가며 다채로운 세상을 맛본다면, 장담컨대, 정말로 행복할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