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다. 김정숙 교수의 수필은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됨으로써 독자들은 한 편 한 편이 수필문학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은 현란한 빛깔과 진한 향기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 현실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위정자의 이념에 따라 달리 정의되고 평가되지만,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이 배제된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 일반적 통론이다. 한 작가의 가치는 한 시대를 대변함으로써 그 폭을 확장할 수 있다. 김정숙 수필의 맛은 대상을 보는 예리한 눈맛에 있다. 문학 본질적인 요소 측면에서 수필의 맛은 ‘인식’에 해당한다. 김정숙 수필의 맛은 대상을 창의적으로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이 두 사고 유형이 김정숙 수필을 맛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김정숙 수필은 지성적 언어를 통해 구축된 준열한 삶의 실상이다.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작가의 강한 공동체 의식의 주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몰입시켜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김정숙 교수도 마찬가지다.
교수직 퇴임 후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은 그녀는 여러 가지 인류애적 공동선을 위해 사회봉사를 해나가면서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글 세계에 몰입하고자 한다.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가치 있는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은 어느 하나에 미쳐야 한다고 했다. 김정숙 교수의 수필 안에는 무엇보다도 치열한 자기반성이 거센 강물을 형성하고 있다. 그녀는 책 머리 글을 “나는 작가일까?”라는 문장으로 장식한다. 이어서 그녀는 “수필집을 엮을 만큼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역사에 대해 공명公明한 철학을 갖고 있을까? 혹시 짧은 글도 쓸 줄 안다는 칭찬을 장식처럼 달고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적 성찰을 놓고 있다. 물론 그 성찰의 바탕에는 압축된 삶의 진한 영혼이 서려 있다. 그 영혼을 만나기 위해 김정숙 교수는 밝고 맑은 곳뿐만 아니라 어둡고 구석진 곳도 찾아다니며 삶의 진경을 만난다. 바로 생명 의식과 진실탐구와의 환상적 교직이다. 작가는 통렬한 종교적 믿음과 지성인으로서의 날카로운 더듬이를 통해 자신만의 인생론을 펼치고,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영역의 그 순수와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방랑자가 되고 순례자가 되고, 구도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삶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은 관계 속 삶 살피기, 일상을 통한 말 걸기를 지향하고자 한다. 시간과 관계라는 도구를 통해 일상에 말을 거는 것이다. 김정숙 교수는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끝없는 순례의 길을 걷는다. 그 둥지의 실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신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에 열렬히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문학은 인류사회가 던지는 공동의 질문에 마음으로 답해야 한단다. 인간과 환경, 우주 만물에 대해 보다 더 진지하게 열린 가슴으로 고민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이제 이 두 세계를 아우르며 공감하는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나와 타자他者의 본성을 선명히 드러내 주는 백자를 굽고 싶다.” 이는 진실로 인류애를 향해 자기 본연의 자세를 다지겠다는 생각이다. 작가가 수필을 고집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