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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진다. 책 속에 존재하는 뜨거운 불이 내 안으로 옮겨붙는 기분이 든다. _안희연(시인)
1부 그냥 하는 마음
마흔의 문턱에서 맞이한 우울증의 폭풍. 작가는 봄꽃이 지는 계절에, 자신의 삶도 함께 시들어가는 듯했던 순간을 담담히 풀어낸다. “모든 것, 그야말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 다니던 직장, 가꾸었던 관계, 반복되던 일상, 계획한 일들, 누리고 느끼던 감정들, 생을 떠받치는 크고 작은 의지 전부가. 걸려 넘어지다, 라는 표현은 그럴 때 쓰는 것임을 경험했다. 40대의 문턱에 나는 완전히 걸려 넘어졌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삶의 밑바닥을 치는 순간의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고통 속에서도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떠받치는 ‘사과’ 같은 소소한 일상의 요정을 발견한다. 차갑고 아삭한 사과의 맛은 무감각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우울의 아침에서 작가를 구원한다.
2부 삶 쪽으로
‘청수사’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교토 여행과 교차시키며, 삶의 고통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중얼거린 “아, 좋다”라는 문장은 “生きてて良かった(살아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주문이 된다. 남편과의 일상을 그린 ‘우리가 깜빡 생을 잊는 동안’ 글에서는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 발견되는 사랑의 순간을 들여다본다. 술에 취해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에서 “잠든 사람 곁에서는 잠들지 않은 사람도 순해진다”는 작은 깨달음도 얻는다. 이처럼 작가는 우울증으로 인해 흐려졌던 일상의 의미를 점차 다시 되찾아간다.
3부 우울할 때 쓰는 사람
3부에서는 작가의 세심한 관찰과 사색이 돋보인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글에서는 낯선 이(노인)와의 예상치 못한 교류를 통해 우리의 선입견과, 작은 친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랑은 듣기’ 글에서는 사랑과 경청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듣기의 가치와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잘 들으려면 따라서 용기가 필요하다.” “선을 넘을 용기”가.
4부 사랑의 얼굴
마지막 4부에서는 사랑, 관계, 그리고 자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생각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을 닮은 사람’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사랑의 얼굴들을 찬찬히 떠올린다. 마지막 글인 ‘고유한 불행’에서 작가는 “‘우리’가 그저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단일하게 묶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상처와 아픔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다친 마음을 버리지 않고,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고쳐 쓰자’고 말이다.
우리가 지나온 불행이 가르쳐주는 것들
《고쳐 쓰는 마음》에 있는 모든 글이 빛나지만 그중에서도 정신병동에서의 일화를 그린 ‘안 좋은 꿈은 아니고 슬픈 꿈’ 꼭지는 단연 돋보인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취약해진 순간으로 글의 장소를 옮기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가장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정신병동’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걷는 것처럼 차분한 문장들은 “슬픈 일이 꼭 안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배우려고 여기에 왔다”에 이르러서 그 밑에 잠겨 있는 깊은 감정의 물결을 꺼내 보여준다. 단편소설의 주인공들 같은 다양한 정신병동의 인물들을 보며 우리는 때로는 무거워지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삶의 다양한 복잡성의 층위를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