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방구석에서 펼쳐지는 광대무변한 생각들
- 조항록 산문집 『나의 충분한 사생활 - 다시, 방구석 생각 일기』
“인생의 찬란을 되새기는 아름다운 비망록”
“이미 지나가버린 것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
“생각에 관한, 생각을 위한, 생각에 의한, 철학적 에세이”
“응답하라, 1967”
1992년 『문학정신』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본업인 시는 물론 소설, 동화, 우화, 산문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는 조항록 시인이 산문집 『나의 충분한 사생활 - 다시, 방구석 생각 일기』(달아실 刊)를 펴냈다.
부제 ‘다시, 방구석 생각 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산문집은 조항록 시인의 전작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들 - 방구석 생각 일기』에 이은 ‘방구석 생각 일기’를 마무리하는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항록 시인은 ‘방구석 생각 일기’를 마무리하는 이번 산문집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생각에 체한다. 내 숨결의 마디마디 생각이 얹힌다. 하염없이 생각을 허정대다 날이 저문다. 각별한 생각들, 밍밍한 생각들, 어여쁜 생각들, 깊이 깊이 저민 생각들. 고군분투하거나 지리멸렬하거나, 나의 모든 생각들. 꿈에도 반짝이는 붉고 푸른 지느러미들. 기능 없는 쓸모들, 전복 없는 혁명들. 어느 때 첩첩산중에는 생각의 별똥별들이 쏟아졌던가. 설핏, 낯선 시간이 우주로 펼쳐진다.”
“방구석 생각 일기는 마침표가 없다. 삶이 다하는 날, 비로소 생각 일기에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찍는다. 그날 나는 어디로 떠나는 것이냐.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어떤 생각 일기를 펼칠 것이냐. 아니면, 마침표 없이도 영영 소멸하는 것이냐.”
“이 책 『나의 충분한 사생활』은 기억과 추억, 사유와 망상의 집합이다. 나는 다만 구상과 비구상, 인간과 비인간, 이미 지나가버린 것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과 감상이라 부질없을지 모르나 나의 삶이 당신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달의 앞면만 쳐다보며 살아가니까, 아무리 악다구니해봤자 달의 뒷면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나의 고유한 재능은 생각뿐이리. 내 쉴 곳은 소용없는 생각, 나의 생각뿐이리.”
라는 문장으로 산문집을 열고,
“장 폴 사르트르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생각 없이 생각한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들을 ‘여분의 존재’라고 했다.”
라는 문장으로 산문집을 닫는다.
조항록 시인은 1967년에 태어났다. 이 단순한 사실을 그는 이렇게 생각으로 바꾸어 펼쳐 보인다.
“내가 태어났다. 또 하나의 희로애락이 출발했다.// 오래전에는 보험 설계사들이 회사마다 방문해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와 함께 보험 상품이 설명되어 있는 광고지를 나눠주었다. 또 직원들의 나이를 물은 다음 그해에 일어난 사건을 정리한 출력물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판촉 활동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1967년의 몇 가지 뉴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해 내가 태어나기 나흘 전에 동백림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의 대규모 공안 사건 중 하나였다. 가수 배호가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 크게 히트시킨 해도 그때였다. 또한 그해 1월에는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공항 트랩을 내려와 당시 여성에 대해 보수적이던 한국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여느 해처럼 내가 처음 숨통을 튼 1967년에도 세상은 참 소란했다. 내가 없던 어제도, 내가 있는 오늘도, 다시 내가 없을 내일도 세상은 한결같을 것이다.// 인간은 좀 특별한 존재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사유는 그 어느 생명체보다 깊고 넓다. 오늘에 머물면서 내일을 염려하고, 자주 오늘보다 어제에 집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간은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함께하면서 이별을 예감한다. 사자는 그렇지 않다. 고래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자꾸 영원이니 행복이니 하며 세상에 없던 말을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어떤 인간은 기쁜데 웃지 않고 슬픈데 울지 않는다. 그 어떤 인간은 기쁨과 슬픔이 쉽게 시들어버리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1967년에 관한 생각」 전문)
그리고 이제 스무 살이 된 큰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무 살이 된 큰아이에게 말했다. 네 인생의 가장 찬란한 한때라고.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찬란했나?// 지금의 나는 찬란하지 않나?// 나는 삼십 년을 먼저 살아온 어른답게 얘기해줘야 했다. 네 인생의 한때가 모두 찬란한 것이라고. 찬란하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순 있다고.//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성인이 된 스무 살 이후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세월을 거치며 퇴적한 생각과 감정을 이 책에 갈무리해보았다. 그러다보니 이따금 스무 살 이전을 추억하기도 했다. 옛날이 또 다른 옛날을 불러오고, 오늘이 또 다른 오늘을 불러냈다. 그러다가 문득 가까운 미래가 떠오르기도 했다. 말이 되거나 말거나, 나는 이 정도로도 숨이 가쁘다. 다만, 나 자신과 계속 사투를 꿈꾼다.”(「극기에 관한 생각」 부분)
그러니까 이번 산문집은 오십 대의 아버지가 이십 대의 아들과 딸에게 들려주는 인생의 비망록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당신이 지금 오십 대의 아버지라면, 당신이 지금 이십 대의 아들 혹은 딸이라면 꼭 읽어보라는 얘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