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위대한 연주가들의 삶과 음악
피아노를 배우거나 피아노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그 피아니스트를 좋아하는 데에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가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그의 연주(소리, 음악)가 자신의 마음에 가까이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저마다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같은 악보를 연주해도 그 음악이 다 다르게 들리고, 어떤 연주를 들었을 때 누구의 솜씨인지 특정할 수 있게 된다. 피아니스트는 작곡가가 만들어낸 작품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며 연주할 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소리에 투영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결국 그 자신을 닮아있다. 우리가 연주자의 삶을 들여다볼 때 그 연주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엿본다. 같은 강물에 몸을 다시 담글 수 없듯 같은 연주를 두 번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늘 새로운 생기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목표로 삼았던 소프로니츠키, 무대 공포증으로 자주 연주회를 취소했지만 뛰어난 기교와 화려한 음향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던 호로비츠, 무대에서 청중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작품에 몰입했던 리흐테르, 칠레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공부하며 독일 음악의 정통성을 이어갔던 아라우, 조국 스페인의 향기가 묻어나는 연주를 선보인 데 라로차, 레코딩이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예술 행위라고 주장하며 무대보다는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굴드 등,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그려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바로 피아노를 업으로 삼은 피아니스트가 쓴 글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귀국 후에도 독주회 및 앙상블 등을 통해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는 저자는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 자신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 피아니스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라흐마니노프, 코르토, 박하우스, 루빈스타인, 소프로니츠키, 호로비츠, 아라우, 리흐테르, 미켈란젤리, 치프라, 데 라로차, 상송 프랑수아, 니콜라예바, 굴다, 글렌 굴드가 그 주인공으로 그들은 모두 저자가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며 내적 친밀감을 쌓은 추억 속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책의 글들은 조금은 개인적이다. 피아니스트들이 보여준 음악의 본질과 음악에 대한 태도, 그들이 구현해낸 음악을 들으며 했던 생각들. 하지만 그렇기에 공감을 더욱 자아내는 이야기들이다.
선별된 디스코그래피와
플레이리스트 제공
20세기는 녹음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시대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로, 이 책에 소개된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상당수 녹음으로 남아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태어난 젊은 연주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같은 연주를 두 번 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스튜디오 녹음을 꺼렸던 소프로니츠키 같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많은 레코딩 자료를 남겼으며, 이 책은 이들 녹음 중 어떤 것을 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한 번쯤 들어봐야 하는 명연을 선별해 소개하고 있다. 또 이 책에서 언급한 연주들을 모아 음악 플랫폼별로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여, 보다 편리한 감상을 돕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