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중, 3중의 편견과 오해가 깔린 울퉁불퉁한 꽃길만 걷게 된 그 남자의 사연
꽃 때문에 시들고, 꽃 덕분에 피어난 플로리스트의 인생 분투기
디지털이라는 고도로 문명화된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낡은 관념이 잔존하고 있다. 은연중에 남아있는 인종ㆍ성별ㆍ지역ㆍ경제계층에 따른 차별은 종종 출몰하여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남성’으로서 플로리스트 일을 하고 있는 저자 또한 예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선입견을 자주 마주했다. 차마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느냐?”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불쾌한 상황은 기본이고, 여성 플로리스트와 고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플라워 업계의 특수한 여건에서 행여나 문제가 벌어지지 않을까 매사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 특히나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플라워 업계에서 일할 때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묘한 구분과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또 하나의 편견 등 이중, 삼중의 제약까지 견뎌야 했다. 저자는 “단순히 꽃이 좋아 플로리스트가 되었을 뿐인데, 필연적으로 나는 경계인이거나 외부인이거나 소수자”(92쪽)의 자리에 있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듯 열악한 환경을 인식을 넓히고 성숙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삼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이나마 넓히게 된 것도,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태도를 그나마 갖출 수 있게 된 것도 플로리스트로 일한 덕분”(91쪽)이라며 자신의 직업과 삶을 긍정적으로 돌아본다.
저자의 삶 속에는 직장인의 노고와 자영업자의 고뇌가 생생하게 담겨있기도 하다. 플로리스트가 되어 목표로 삼았던 “무궁화 다섯 개가 붙은 특급 호텔의 플로리스트”(159쪽)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저자는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질병을 얻게 되었다.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이라는 구분 없는 업무 강도는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남겼다. 업계의 특성상 서른을 전후로 고용주에게 ‘연봉’을 보장받을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창업을 하게 되면서 저자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알레르기는 기본, ‘테니스 엘보’와 ‘골프 엘보’ 등 직업병과 같은 질환을 몸에 달고 “언제나 한 계절을 먼저 찾아온”(23쪽) 시간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플로리스트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없이 행복해하고 감사한다. 유칼립투스 냄새가 밴 채 퇴근한 자신을 반긴 어린 아들이 훗날 “자신을 키워준 냄새로 기억”(227쪽)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플로리스트란 직함도 내려놓고, 상품 가치가 될만한 꽃장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날이 와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어딘가에서 흥얼거리며 꽃을 만지고 있는 삶을 꿈꾼다. ‘소확행’이 여행이나 먹을거리와 같이 취미가 아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독자에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