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 만나는 식물의 찬란함과
무수한 실패가 가르쳐준 너그러운 체념,
그리고 초록이 치유한 마음에 대하여
정원의 사계절은 바쁘게 돌아간다. 겉으로는 꽃과 함께하는 우아한 삶처럼 보이지만, 실제 가드닝은 끝없이 돌아가는 육체노동의 연속이다. 저자도 처음엔 알아서 돌아가는 정원을 꿈꿨지만, 가드너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금 시작하기를 수년,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사는 것이 몸에 뱄다고. 냉혹함과 너그러움이라는 자연의 양면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음자리를 넓힌 것이다. 덕분에 늦된 맏아이를 돌보는 고충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아픔도 잠잠히 껴안고 나아갈 수 있었다.
새로운 식물을 마음껏 지르며 기뻐하는 모습, 매일의 노동에 넌더리를 내는 모습처럼 식집사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모든 글에 잔잔히 깔린 테마는 ‘치유’다. 서문에 “정원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이라 밝혔듯, 계절에 순응하는 단순한 삶은 결국 스스로를 보살피는 과정이다.
더, 초록에 스며들 것,
더, 초록을 사랑할 것,
천국은 멀지만 초록은 가까우니까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별로 짚어가는 구성은 가드너의 일 년 살이를 천천히 따라간다. 싱그러운 초록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절정을 맞고 사그라들어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일 년 내내 가꾸던 초록들이 스러지는 순간, 저자는 “아쉽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는 법. 끝이 없었다면 벌써 질려 나가떨어졌을 거”라며 새로운 희망을 속삭인다. 내년에는 내년의 초록이 있다. 인생의 한 챕터가 접히더라도 결코 끝이 아니라는 걸, 저자는 계절의 되풀이 속에서 깨닫는다. “아,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거구나. 저지르고 나서 비로소 알아챘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삶에 자연을 들이는 일이다. 초록이 배경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저자가 가드닝을 권유하는 이유다. 그러나 모두가 정원을 가꿀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 넉넉한 초록의 호사는 마음만 먹으면 일상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저 조금만 초록을 가까이하고, 차근차근 눈에 담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초록의 찬란한 기쁨을 누구나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 유튜브 채널명도 ‘더초록’, 즉 ‘더 많은 초록’으로 지었다. 직접 보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영상으로나마 초록의 기운을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떡잎을 밀어 올리는 희망, 휘몰아치는 성장통 속에서도 꿋꿋한 초록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위안이다. 지상에 천국은 없지만, 대신 초록이 있다. 평온함과 안정감의 원천은, 어쩌면 천천히 초록을 응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