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서면서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흐름이 쇠퇴하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이 강화되었다. 이는 2001년 911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유럽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위기 등 세계사적 위기의 연속적 발생과 무관치 않다. 특히 2010년대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제성장을 위해 내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은 이와는 별개로 내수보다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아도 무역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미증유의 경제위기라고 하면 1997년 12월 시작되었던 IMF 외환위기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국가적 위기였음에도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사건이라 정서적으로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국민 일상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은 대부분 공감하는 사실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은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정책을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재테크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국가와 공동체는 점점 사라져가고 그 자리를 시장과 자본이 차지하게 되었다. 각자도생의 시대, 양극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에도 더욱 강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IMF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위기 이전 수년간 무역수지 적자로 인한 국가신인도 하락과 외환보유고 감소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 과도한 부채를 활용한 중복 과잉 투자, 무분별한 외환 단기차입,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과 환율방어를 위한 외환보유고의 소진과 고갈이 결국 국가부도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상황만큼은 막기 위해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의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무역(대외) 부문에서 발생했던 불균형이 외환위기를 불러오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무역은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무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무역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역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풀어서 이야기하고 생각해 보면 어느새 어렵게만 느껴지던 것도 쉬워진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 원리를 이해하고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게 되면 무역이 우리의 삶과 얼마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가 보이게 된다. 정부가 왜 그렇게 FTA를 외쳐왔는지, WTO 협상과 무역분쟁 결과에 신경을 쓰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기업들이 왜 끊임없이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2017년 9월 26일~28일 3일간 스위스 제네바 WTO에서 열린 WTO Public Forum에 참석한 바 있다. 개회식 연사로 참석한 IMF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총재는 무역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우리나라가 무역을 활용하여 경제성장을 이룬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하였다. 라가르드 총재뿐만 아니라 대다수 경제학자와 전문가도 우리나라가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는 우리나라의 성공 스토리를 부러워하고 배우려 한다. 이처럼 무역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된 중요한 동력이자 토대가 되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무역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국방 등 모든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안으로는 소모적이고 해묵은 이념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념을 넘어 국부의 증진과 국민의 복리를 향상하기 위해 성숙하고 한 단계 높은 민주공화국으로의 전진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가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온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인적, 물적 자본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경제 환경의 변화와 이로 인한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산업계를 포함한 사회 각 부문에서의 새로운 혁신 및 생산성 향상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안으로는 계층, 지역, 세대, 고용 등에서의 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분열 및 양극화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밖으로는 미국 등 자국 우선주의의 강화와 신보호무역주의의 도래에 대응해야 한다. 세계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무역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해야만 한다. 결국 핵심은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은 종국적으로는 가격과 품질 두 가지로 결정되게 된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주로 의지했던 방식은 주로 가격경쟁력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방식은 대규모 노동과 자본 투자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비용 절감을 활용하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경제성장 단계에서 일정 기간 유효할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성장률의 하락과 정체로 인해 이러한 한계가 현실화하고 있다. 대규모의 노동과 자본의 투입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따라서 기존의 수출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단계 높은 경제적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를 넘어서는 경제구조와 수출방식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은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그 원천이 되며 생산성 향상은 노동과 자본 투입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 개척과 기업의 끊임없는 새로운 혁신과 품질 향상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의 개척, 혁신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와 품질의 제고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마디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결국 무역도 다른 경제 변수와 같이 새로운 경제 환경에 맞추어 새롭게 변모하고 활로를 찾아야만 한다. 미래에도 여전히 무역은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무역을 통한 끊임없는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우리나라를 보다 더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필요한 인적, 물적 인프라의 구축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무역 분야에 필요한 인적자원의 구축을 위해 기존의 교과서 위주의 대학 교육에서 벗어나 산ㆍ관ㆍ학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인적자원의 구축을 위해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수요에 맞추어 무역실무 인력부터 국가 간 통상협상 등을 담당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통상전문가 양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이 무역 인력 양성을 위한 기초적인 교과서 또는 교양서로 활용되길 바란다. 일반인도 무역을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경제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역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모두 4개 PART, 13개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PART I에서 ‘무역’이라는 대주제로 제1장부터 제3장까지 무역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제1장에서는 무역의 목적, 원인, 패턴 등 무역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제2장에서는 관세 논쟁, 유치산업보호론 등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기술한다. 제3장에서는 지난 한 세기 이상 자유무역의 배경이 되는 다자 무역 협정의 이점에 대해 논의한다.
PART II는 ‘WTO 기초’라는 대주제로 제4장부터 제7장까지 WTO 및 WTO 협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집중한다. 제4장에서는 WTO가 다자 무역 질서의 결정체라는 주제로 WTO의 연원, 목적, 기능 등에 대해 살펴본다. 이어서 제5장에서는 최혜국대우 원칙, 내국민대우 원칙 등 WTO의 기본원칙에 대해 살펴본다. 제6장에서는 긴급수입제한 조치, 지역무역 협정 등 WTO 기본원칙의 예외에 대해 살펴본다. 제7장에서는 WTO의 협상과 그 성과를 가능하게 한 다자 협상과 의사결정 구조 등을 중심으로 WTO의 의사결정 원리를 기술한다.
PART III는 ‘WTO 심화’라는 대주제로 제8장부터 제11장까지 현재 진행 중인 DDA의 주요 협상 이슈와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안, 그리고 WTO 무역분쟁 등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본다. 제8장에서는 DDA 등 WTO가 당면하고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서, 그리고 제9장에서는 우리나라와 WTO의 관계와 WTO의 다양한 협정 및 협상의 의미와 우리나라의 대응에 대해 살펴본다. 제10장에서는 WTO 무역분쟁을 주제로 WTO 무역분쟁해결제도와 우리나라의 무역분쟁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어서 제11장에서는 WTO 분쟁해결제도 개혁 등 최근 논의되고 있는 WTO의 개혁 이슈와 시사점 등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 부분인 PART IV는 ‘통상이슈와 정책’이라는 대주제로 제12장과 제13장에서 주요 통상이슈, 현안 및 주요국의 통상정책에 대해 살펴본다. 제12장에서는 쌀시장 개방, DDA 2.0 등 WTO와 관련된 사안뿐만 아니라 ISD, FTA, 코로나 팬데믹, 러ㆍ우 전쟁,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중요한 의미가 있는 통상이슈와 과제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제13장에서는 우리나라와 미국, EU,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의 통상정책 결정 과정과 관련 정부 기관에 대한 비교와 설명을 부연한다. 특히 중국의 경우 통상정책의 특성과 변화를 소개한다.
이 책은 2018년 저자가 출간한 『쉽게 읽는 WTO와 무역 이야기』를 기초로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6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2024년 현재의 세계경제 환경은 2018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있다. 특히 2020년 초 발생하여 3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경제와 무역에 큰 충격과 상흔을 남겼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세계와 우리나라는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류사적, 세계사적 사변이었다.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따른 통상질서의 변화와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 관련된 사안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책의 제목도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무역과 통상 관련 이슈와 사실(facts)을 전달하고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본다는 차원에서 ‘국제통상’(INTERNATIONAL COMMERCE)으로 정하였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WTO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무역과 WTO, 그리고 주요 통상이슈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있어 무역과 통상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우리나라 무역과 통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