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을 거닐며 일상을 재발견하다
“아이는 내가 정년퇴직할 무렵 우리에게 왔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을 은퇴자의 무료한 일상은 아이의 출현과 함께 천지개벽, 완전히 뒤집혔다. … 아이는 새 한 마리 울지 않는 불모의 황무지를 온통 ‘신생(新生)’의 숲으로 바꿨다.”(‘머리말’, 6~7쪽)
평생 기자로 살며 새로운 사건과 특별한 사람을 찾아 전국을 누비던 작가에게 은퇴 후 ‘일상으로의 귀환’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지루한 일상. 그걸 변화시킨 것은 어린 손녀와 시작한 세검정, 즉 백석동천(白石洞天) 산책이었다. 맑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즐기는 손녀와 함께하면 익숙한 나머지 화석이 돼 버린 세검정 마을과 쳇바퀴 같은 일상이 다시 살아 숨 쉬며 반짝였다. 손녀와 함께라면 50년을 살아온 동네 산책도, 마당의 작은 정원 가꾸기도 모두 즐거웠고, 그 모든 일상의 추억이 담긴 집은 보석상자처럼 느껴졌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여행하다
“감각이 무뎌지고 생각이 상투화되는 이들이라면 아이들에게서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의문과 호기심과 감각을 배워야 한다. … 주어진 공식대로, 익숙한 패턴으로 받아들이고 느낄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연민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보고 느껴야겠다.”(‘할머니, 새 복이 뭐야?’, 159쪽)
애초에 작가는 손녀를 세검정으로 초대해 ‘산교육’을 하려 했다. 여의도 아파트에서 외동딸로 자라는 손녀가 세검정의 자연을 체험하고 그곳에 깃든 추억을 들으며 고향과 가족의 의미를 깨닫길 바랐다. 그런데 손녀는 오히려 각박한 현실에 매몰되어 있던 작가를 동심의 세계로 인도했다. 설날 새해 인사를 하며 ‘새 복’이 뭐냐고 묻고, 작가를 ‘곰탱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장난을 걸었다. 발아래 핀 작은 민들레 한 송이에 감동하고, 함께 뛰노는 늙은 개 ‘산이’의 아픔을 달래 주며, 두둑한 용돈보다는 마음이 담긴 편지 한 장에 기뻐했다. 작가는 손녀를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열렬한 호기심과 눈부신 명랑함, 순수한 사랑, 그리고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명랑하고 유쾌한 성장기
“그동안 게으르게나마 아이의 성장을 기록했다. 말이 ‘성장기’이지 실은 ‘아이와 할배의 동반 성장기’였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었다. 백석동천 아니 백악동천을 쏘다니며 세검정 구석구석을 살피고 신선 흉내도 냈지만, 아이와 함께하면 어디나 ‘동천’이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행복한 날들이었다.”(‘신통방통, 인생은 아름다워’, 379쪽)
작가는 손녀가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함께한 4년의 빛나는 시간을 기록했고, 그것이 이 책이 되었다. 여기에는 손녀의 성장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인 작가의 성장 과정도 담겨 있다. 툭하면 목말을 태워 달라고 칭얼대던 꼬마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보살핌과 응원 속에서 한라산도 묵묵히 오르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은퇴 후 무력감에 빠졌던 작가는 손녀가 일깨워 준 일상의 행복 덕분에 활력을 되찾고 진정한 아버지, 할아버지로서 존경받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명랑하고 유쾌한 성장 과정을 그린 이 책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순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