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액처럼 진하고 맛깔난 문장 속에 담근 기억의 숙성
유춘덕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해 전,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다. 언니 따라 글쓰기 모임에 갔다가 선생님의 눈에 띄어 글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시작해, 책을 만들어준다는 제법 규모 있는 응모전에 당선되기까지 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시각에 손상이 올 정도로 몰입하며 이 한 권의 책에 그녀가 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봉숭아 물은 꽃허고 이파리 쬐까 따고 소금도 쪼까 넣어가꼬 콩콩 찧어서 손톱 등거리에다 붙여놔야. 그런 다음 비니리로 싸 가꼬 실로 꽉 쬠매서 하루 저녁 자고 나믄 물이 딱 들제. 내가 니그가 째깐했을 때 해줬제에. 가만있어 보자. 다섯 명을 다 해줬능가 덜 했능가…….” _본문에서
『내 이름은 춘덕이』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춘덕이의 엄마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딸 다섯을 홀로 키운 억척이다. 고무신에 몸빼바지, 뽀글머리로 기억되는 전형적인 촌부(村婦)로, 남들 볼 땐 한숨 한번 안 쉬었다는 ‘독한’ 여자지만 아이들 머리 이 잡는다고 파리약 피디피 안 뿌리고 하나하나 잡아주던 ‘따뜻한’ 엄마다. 그런 엄마가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치매가 시작됐다. 기억을 잃고 있다. 춘덕이는 그때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궁금한 게 많아 물어보고 듣고 이해하고 기록한다.
엄마, 고향… 아련할수록 깊어진다!
나는 첫눈이 올 때 울었다. 살아갈 일이 막막해서 울고, 살아야 할 날이 너무 많아서 울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내 안부를 물어오는 전화기에 대고서 엉엉 울어버렸다. 젊고 건강한 내가 부럽다면서 덤으로 주신 인생이 감사하다는 팔십 넘은 할머니를 붙들고서 그랬다. 뇌출혈로 쓰러져서 방 안에만 누워 있었는데 다시 걷게 된 것이 꿈만 같다며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분께 말이다. _본문에서
『내 이름은 춘덕이』는 작가 개인의 경험이긴 해도 동시대를 살아온 독자가 재미와 연민을 함께 느낄 법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춘덕이란 이름으로 살아오며 ‘당했던’ 다양한 반응들, 엄마의 구수한 사투리로 전해 듣는 아빠 이야기. 옷과 헤어스타일과 신발에 얽힌 사건들, 고향 친지 친구들과의 추억, 도시로 이사한 뒤의 생경하고 쓸쓸한 느낌, 엄마와 언니 동생 사이의 서로 다른 기억과 오해 등 작가의 글 속에서 엄마 생각, 고향 생각은 아프기도 하고 아름다기도 하다. 작가가 스스로 밝혔듯, 자신의 미모와 바꾼 글 하나하나가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