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는 까닭 중 가장 큰 요인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꼰대질’로는 젊은이들의 각성은커녕, 오히려 반발심만 사서 관계에 악영향만 끼치게 된다. 청년들은 이런 ‘꼰대질’을 극히 혐오한다.
필자도 나이로는 꼰대이다. 아직 내가 꼰대가 아니라고 우겨봐야 소용없다. 꼰대란 타이틀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섭섭해 할 일도 아니다. 유년, 청년, 장년의 과정을 거쳐 왔으니, 이제 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세상에 어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그렇다면 나이가 많으니 존중 받아 마땅한가? 미안하게도 지금은 나이로 존중 받는 시대가 아니다. 존중은 고귀한 인품과 함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베풀 때 인정된다.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하나만으로도 대접받았다. 지금은 21세기 첨단산업의 시대이다. 나이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나이 많은 세대가 쌓은 정보는 이미 이 시대와 크게 부합하지도 않는다.
아쉽지만, 더 이상 필자도 세상에 큰 영향력을 펼칠 수 없다. 나이가 많아지면, 사고도 변해야 한다. 생각과 언행은 그대로인 채, 요즘 젊은 것들,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고 나무라서는 안 된다. 어른들에게 젊은이들은 늘 마뜩찮았다. 무려 기원전 193년에 제작된 로제타석(Rosetta Stone)에도 ‘젊은이들이 버릇없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금의 노인들이 젊었을 때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버릇없는 것들! 세상이 어쩌려고 이러나? 매시대마다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노인들이 호들갑 떨었지만, 세상은 그러구러 잘도 흘러오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걱정은 늘 기우요, 과유불급이었다.
꼰대의 나이로 들어서는 순간, 존중 받지 못한다고 하여 화를 내거나 떼쓰지 않아야 한다. 젊은 것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더라도, “너 몇 살이야?” 하고 대뜸 나이부터 물어보지 않아야 한다. 몇 살이면 어쩌려고. 그간 우리 꼰대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숱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왔다. 그 노고는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인정해 달라고 젊은이들에게 떼를 써서는 안 된다. 물러설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우리에게 세상을 물려주었듯, 이제 그만 ‘새파랗게 젊은 것’들에게 세상을 맡겨두어도 괜찮다. 피었으면 질 줄도 알아야 한다. 매화꽃이 져야 매실이 열린다. 신 매실이 변해야 달콤한 매실청도 되고 짭짤한 장아찌도 된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벗는 일,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 꼰대들이 할 일이다.
세상에 해결해야 할 갈등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적 갈등, 사회적 갈등, 종교적 갈등, 빈부 갈등, 젠더 갈등 등등. 여기에 얼토당토 않는 ‘꼰대짓’으로 세대갈등까지 심화시킬 것인가!
필자는 늘 최근 심화되고 있는 세대 갈등의 해결사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나이 든 ‘꼰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하여 이미 젊은 시절을 다 보낸 ‘꼰대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밉상이나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고, 그들에게 오히려 참신한 아이디어맨으로 보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고민해 왔으며, 그 결과 이 책 『슬기로운 꼰대생활』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이 책은 세대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격차를 줄이고자 쓴 것으로, 이미 젊은 시절을 다 보낸 ‘꼰대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오히려 참신한 아이디어맨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려고 의도한 결과물이다.
그 참신한 ‘노인네’들을 우리는 슬기로운 꼰대, 줄여서 ‘슬콘’이라 부르기로 한다(슬꼰은 발음이 너무 강하여 슬콘으로 명명하였다).
저물어가는 세대인 슬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비전과 노하우를 전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슬기로운 꼰대들은 이러한 임무를 철저히 명심하여 다음세대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과 깨달은 점을 친절하게 전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따뜻한 사회‘가 있다. 슬콘들이 이 땅에 남아 있는 동안 이런 화두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좀 더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짧은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처럼 바쁜 시대에 긴 글은 독자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독서를 강제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취지에 부응하여 되도록 짧게, 하고 싶은 말의 요점만 간략하게 표현했다. 필자 나름대로는 이런 류의 글이 시대에 부응하는 글이라 생각한다.
AI시대에는 어떤 사상이나 사건의 핵심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 AI보다 빠르고 쉬운 이해가 가능한 그런 새로운 장르의 글이 나타나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글들은 수식어를 대폭 줄이고, 사상의 뼈대와 말하려는 핵심적인 알맹이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부디 필자의 의도가 담긴 이 책이 앞으로 AI시대에 새로운 장르의 글을 선도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