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아름답다 여기는 일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에게
왜 패션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 시작은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욱 꾸미고 차려입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내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옷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현재의 도시에서, 우리의 일에서 ‘우리 ‘다시’ 낭만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쓴 김도훈 저자의 ‘서울 간지’ 글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서울에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 명품과 패션 시장에 대해,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며 그것과 함께 지낸 시절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그럼에도 우리는 왜 지금, 패션을 알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김도훈 저자의 이 문장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패션을 알아야 한다. 많은 실패를 입어보아야 한다. 당신이 걸친 옷, 그것이 완성하는 당신만의 스타일, 정체성이 대신 그 일을 해줄 것이다.’ 다만 그 패션이란 ‘그래서 비싼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으면 다 해결된다’로 읽히는 의미는 아니지만.
옷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김도훈 저자 다음에는 ‘패션은 정말 재미없다,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김현성 저자가 있다. 패션이 그렇게 재미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와 미디어, 대중에 의해 패션이 다뤄지고 논의되는 풍조에 대해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패션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패션과 밀접하게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패션 포토그래퍼에서 환경과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잡지 「오보이!」를 창간하기까지의 시간을 10년 단위 글로 만나며, 우리가 의식 없이 만나고 있는 이 시간이 우리의 무엇을, 어떤 일로 향하게 하지는 않을까 새삼 의식하게 된다. 패션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조금 있다면 직업과 관련한 것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적당히 아는 척하고 적당히 잘난 척하기에 좋다는 저자의 말 또한 우리가 그저 패션을 즐길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세 번째 옷을 만드는 사람, 디자인 스튜디오와 브랜드 OYK를 운영하며 새로운 미감을 만드는 사람, 오유경 디자이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을 여는 문이 되어준 첫 사진, 야외극장은 김현성 저자·사진 작가가 촬영했고, 그 사진과 함께 전하는 표현 ‘자신이 아름답다 여기는 일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패션 디자이너 오유경 저자의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즉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는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 과정에 대한 담백한 이야기에는 충고나 조언의 의도가 전혀 담기지 않았음에도 꽤 실용적인 위안으로 들려온다. ‘마무리 짓는 지점이 많아질수록 내가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의 시작이 다양해진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옷 만드는 과정’ 이야기는 우리 각자가 만드는 책이든 무엇이든, 일의 시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라는 제자에게 직접 받은 그 질문에 마음을 담은 편지글은 독자 여러분도 받을 수 있는 편지이기를 바란다.
이어서 책 『도쿄 큐레이션』에서 일본의 시간과 풍경을 전했던 이민경 저자는 도쿄의 시간 전에 경험한 패션 에디터의 시간에 대해 말한다. ‘버리지 못한 옷’에 대한 글은 비단 옷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연에 관한 것이며 ‘흰색을 닮은 생활’ 글에는 패션계의 흰색뿐만 아니라 여름날의 흰색, 밥만큼 소중하고 유일한 하얀색 이야기도 담겼다. 저자의 언어에서 천천히 거닐다 보면 우리의 열정(passion) 넘치는 일은 잠시 잊고 정원을 거닐다 집으로 돌아와 휴식하는 기분마저 든다. ‘빈티지 마켓에서 구입한 레이스 천, 청초한 동양난, 조용히 내리는 첫눈’의 표현을 그대로 닮은 저자의 공간과 패션 아이템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만나며 우리 각자가 계속 경험하고 싶은 ‘패션, 패션 아닌’ 세계를 다시 떠올려보는 경험도 재미와 의미가 있을 것 이다. ‘나의 영원한 플립플랍이 말하는 것’ 글에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패션과 삶을 즐기는 에디터적인 시선을 따라 각자의 생활에서 작은 시작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흰색을 닮은 이야기 후에는 김참새 화가의 색채를 담아낸 그림과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작가의 첫 그림, 초록의 자연 안에서 꽃과 동식물, 인간의 생활을 보여주는 듯한 시계가 오손도손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해피엔딩의 장면처럼 다가온다. 무언가를 다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초록의 장소처럼. 또한 그림 그리는 일의 기쁨과 고민을 담은 이야기도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느껴진다. 화가로서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발견한 인생 운동, 그리고 그 운동복을 고르는 일을 통해 ‘무엇이든 나와 잘 맞는 걸 찾는 일은 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내용에서부터,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백지 긴장을 오히려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며 그에 맞는 마음의 옷을 소개하는 이야기. 한 가지 마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다채롭고 유쾌한 작가의 우주를 마주하게 된다.
나아가 김참새 작가의 네 번째 글 ‘이상하지만 귀엽고 재미있는’에서 ‘흘러가다 보면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는 그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재미있는 거니까. 난 아마 계속 이렇게 살게 될 것 같다’는 문장은 하루 다짐으로 삼아보고 싶어진다.
한때의 유행과 옷은 잊혀도, 우리는 우리의 패션(passion)을 잊지 못한 채 무엇이든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일을 위해 움직였던 당신의 마음 자체가 당신의 옷, 패션, 클래식이다. 그렇게 fashion이든 passion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