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자체 A/S’를 하며 살아가는
마흔 살, ADHD인의 일상 전투 기록!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충동성 장애)라는 키워드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언론이나 출판계에서 이 주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만큼 이 병에 관심을 갖는 또는 가져야만 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ADHD 진단을 받은 사례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누군가는 ‘정신과와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신상품’이나 ‘패션 정신병’이라고 이 병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ADHD는 오랫동안 그 증상이 보고되어 온, 세계적으로 전체 성인 인구의 5%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분명히 실재하는 병이다.
그럼에도 ‘멀쩡해 보여서 잔인한 병’인 ADHD의 특성상 많은 사람이 진단에서 배제되거나 진단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채 그저 자신을 ‘남과는 조금 다른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곤 한다. 특히 ‘눈에 띄게 산만한 병’으로 고정된 ADHD인의 이미지 때문에 오랫동안 진단 사각지대에 머무는 ‘조용한 ADHD’인들이 많다. 이 책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의 지은이 민바람 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민 작가는 여러 선입견 속에 ADHD를 진단받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고, 그만큼 현실에 부딪치며 스스로 ‘사는 요령’을 찾아나갔다. 작가에게 진단은 큰 의미가 있었다. 작가는 진단을 받은 뒤 지난 삶의 퍼즐 조각이 한 번에 맞춰지며 처음으로 인간의 자격을 부여받은 기분이 들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병명을 아는 것 자체가 마음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고통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정신과에 가서 그것을 수치화하기 전까지는 고통받는 자신을 끝없이 평가하게 된다. 수치화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자아는 바람 빠지는 행사 풍선처럼 서서히 쪼그라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일상인 ADHD인은 주변 반응을 살피며 부정적 자아상을 굳히기 쉽다.”
불편과 더불어 산다는 것, 그 가혹하고 상냥한 이야기들
책은 작가가 ADHD를 의심하고 진단받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일터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는 모습들…. 작가의 일상은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ADHD 증상들과 씨름하며 ‘보통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 ‘고통’이 숨어 있다. 작가는 내면의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선다. 우아함보다 ‘우악스러움’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며, 자기 고통 안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보는 ‘내면의 우아함’을 추구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동안 성인 ADHD에 대해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어서 ADHD를 여러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ADHD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 사람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하는 일화도 풍성하다.
작가는 자신에게 찾아온 병을 미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통합할 수 있는 힘이 진짜 긍정이라고 말한다. 병이 가져다주는 불편을 소중히 여기며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을 갖기까지 작가가 겪어낸 과정들을 살피다 보면 이해를 넘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통찰은 읽는 이에게 마음 깊은 위로가 되어준다.
“사소해 보이는 고통이 사소하지 않다는 걸 믿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떠나지 않는 괴로움을 밀어내려고 애쓰다가 점차 괴로움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쳤다. 고통이 나를 이루는 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민 작가는 “ADHD 때문에 머리와 마음은 힘들었지만 ADHD 덕분에 다채로운 즐거움도 누렸고, 조바심만큼 성취감도 많이 느꼈다”면서 이 책을 “나의 가혹하고 상냥한 ADHD”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ADHD와 함께하는 삶이 자신에게 점점 의미 있는 삶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책을 마무리하며 작가는 ADHD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약속에 조금 늦더라도 우리는 주위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지금의 어려움이 삶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니 그냥 계속 가보자”고. “만일 지금 약간의 힘이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지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