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의 희생은 당연해야 하는가
나혜석의 《여자도 사람이외다》
1922년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어머니가 되는 과정과 심정을 말하며 여성 고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이 글은 모성의 가치를 언급하고 옹호하면서도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뤄야 하는 여성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글을 지면에 실린 후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1934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이혼 고백서〉는 〈모(母) 된 감상기〉에 대한 비난 수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결혼에서 이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글에서 이혼 과정에서 남성들의 편협함을 읽고,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정조 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와 부딪쳤으며, 여성들이 현모양처라는 경직된 틀에 구속당하는 시대에 저항했다. 〈이혼 고백서〉는 그가 경직된 사회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그 때문에 얼마나 저항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그것은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새롭게 되살려낸 나혜석의 삶과 꿈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선 불꽃 인생!
우리나라 여성 중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 신여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일본에서 서양 유화를 배웠고 국내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재능은 그림에만 머물지 않았다. 1918년에 조혼과 가부장제 등 여성에게 불리한 관습을 비판한 소설 〈경희〉를 발표하며 작가로도 남다른 재능을 키웠다.
그는 화가와 작가이기 전에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여성이자 여성의 권리를 찾고자 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침묵하지 않았으며,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고 저항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웠다. 그 싸움은 인형이 아닌, 여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살고자 한 바람이자 실천이었다.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었고, 지금 우리 앞에 살아 돌아왔다. 사회는 그를 고립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저항과 도전은 시대를 앞서가는 용기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