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한 세계를 부수고 나온 욕망에 충실한 미친, 여자들이 있었다
성실하게, 단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살아온 저자에게 닥친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였다. 그녀는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해왔던 모든 일, 여자이기 때문에 참고 억눌렀던 모든 감정을 내려놓기로 한다. 여자 그리고 엄마로서 이제까지 짊어지고 온 부담과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쉬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무진장 애를 쓰며 살아온 지난 세월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저자는 스스로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기 위하여 다른 여자들의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녀는 손바닥만큼의 자신만의 영화관에서 다양한 여자 주인공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자신 안에 가득했던 솔직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여자 그리고 엄마, 딸로 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경험과 생각들에 대하여. 세상에서 튕겨져 나가버린 여자들의 이야기,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27편의 영화와 5편의 드라마 속의 여자 주인공들을 만나는 동안 저자는 그동안 생각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다른 인생을 들여다보게 된다. 남편의 죽음이 슬퍼서 회사의 모든 직원들과 잠을 잤다는 여자(〈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자신이 국가대표였을 때, 메달을 따는 장면을 돌려보며 자위하는 한물간 운동선수(〈더 브론즈〉), 제자의 글쓰기 재능을 탐내다가, 다섯 살 제자를 납치한 유치원 교사(〈나의 작은 시인에게〉),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회사 컴퓨터를 초기화해버린 인턴(〈아워바디〉), 밤마다 술 취한 척 연기하며 성범죄 가해 남성을 응징하는 여자(〈프라미싱 영 우먼〉), 어린 남자와 불륜에 빠져 고객 돈을 횡령한 은행원(〈종이달〉), 수시로 다른 여자에게 빙의되는 주부(〈82년생 김지영〉), 두 아이를 돌보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한 엄마(〈로스트 도터〉), 남자 노인들의 자살을 도와주는 성매매 여성(〈죽여주는 여자〉), 일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미스 슬로운〉), 결혼 여섯 시간 만에 파혼을 선택한 여자(〈체실 비치에서〉), 아이가 곧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온전히 아이의 탄생을 선택하는 여자(〈컨택트〉),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자식을 의대에 보내려는 엄마들(〈스카이 캐슬〉), 자신이 배신한 연인에게 다시 돌아가려는 여자(〈아사코〉)···
영화·드라마 속 서른두 명의 주인공, 잘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들은 왜 미쳐버렸을까. 그러나 세상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그 여자들이 어쩐지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자신이 원하는 일에,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그 여자들은 이제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 그동안의 기준이, 세상이, 사회가 잘못되었던 거라고 말하는 그녀들. 미쳐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여자들. 스스로 만든 굴레, 세상이 씌어준 속박을 벗어던지고 그녀들은 이제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해 과거와 이별한다. 세상이 정한 행복 그리고 성공과는 다른 길에 서 있는 그녀들, 껍데기를 벗어던진 그녀들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 옆에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교집합처럼 꺼내 놓는다. 이제까지 달리던 선로를 벗어나 미쳐버리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겹쳐본다. 완벽하게 보여지는 내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가는 일에, 미친 여자들의 서사가 당신에게 로드맵이 되어줄 것이라고. 그러니 욕망에 충실한 이 여자들을 한 번 보라고··· 당당하고 이상한 이 여자들을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의 삶은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일지 ‘그리고 불행하게’ 일지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어떤 날은 이 정도면 행복하지, 라고 생각하며 살다가도 어떤 날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마는 여자, 엄마, 그리고 딸···. 나의 욕망에 귀 기울이며 정직하게 살고 싶다가도 세상의 눈치를 자꾸만 보게 되는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여자들에게 이토록 솔직하고 행복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내면의 목소리를 모른 척하고 살다가 탈이 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여기, 아프게 꺼내 놓는다.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 목소리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한 발 더 가 봐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라.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고 아끼며,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라는 타인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욕망에 충실한 여자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