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로 세상에 왔다가 탄저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든 닭에 쪼여 도중에 운명이 바뀌든 이 모두가 자연의 섭리이며 주어진 몫이다.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고추 먹고 꼬끼오」) 자연의 섭리와 세상살이의 원리가 다르지 않다고 믿는 작가가 섬세하고 서정적인 묘사로 그려낸 안동 선돌 마을의 자연풍경과 택시를 운전하며 생생히 스케치한 사람살이 각양각색 사연을 함께 버무린 작품들은 고재동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감 넘치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다.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때론 분노하며 살아가면서 맛보는, 세상살이의 달곰씁쓸한 묘미가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려져 편 편마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살아가는 동안 나에겐 대문은 없다. 나는 언제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고 싶다.”라는 작가의 활짝 열린 마음 안으로 들어온 생생한 세상 풍경이 참 따뜻하다.
인정 넘치는 택시 기사인 작가가 만나는 손님들 저마다의 사연이 심금을 울린다. 추운 겨울, 아흔하나의 연세에 증손자를 돌보느라고 아침마다 걸어서 고추 상회까지 가는 할머니, 자식에게 버림받고 중병을 앓으며 외로이 살아가는 독거노인(「열쇠 구멍으로 본 풍경」), 추석에도 연락 없는 자식 준다고 밤 따는 할머니(「거짓말하는 꽃」), 중환자실에 입원한 늙은 아내를 매일 면회 가는 아흔하나 잡수신 할아버지(「두고 온 멧돼지」) 등 시골의 고령 노인들이 맞닥뜨린 힘겨운 삶의 모습, 코로나 시국의 어두웠던 사회상-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라 생목숨을 끊은 중년 남자(「억이의 외출」)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고 전 재산을 날린 후 원룸으로 밀려난 부부(「첫눈, 세 번째 눈」) 등-과 유례없는 팬데믹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소시민과 소외 계층의 사연 많은 삶(「노란 민들레」)이 “짠한 풍경”으로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작가는, 웃음과 낙관으로 삶의 고비를 넘을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의 귀한 삶도 소중하게 그려낸다. 야간 공장에 다니느라 8년째 새벽 2시면 출근하는 참 부지런한 그녀(「시집가는 자두나무」), 시집와서 40여 년 시부모를 모셨다는 그녀(「담 넘어가는 개나리」), 왕복 택시비를 내가며 친구에게 새벽에 선물을 정성껏 전하는 천사 같은 그녀(「까치설날」), 영어의 몸이 된 남편 옥바라지하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녀(「하현달」), “미장원을 해서 번 돈으로 길고양이를 30년째나 돌보는”(「입동 무렵 와야천」) 그녀 등, 멋진 “그녀”들의 용감하고 사랑 넘치는 일상이 보석 같다. 또 혼자되어 고향에 온 여든넷의 할배가 여든둘 할매와 일으킨 사랑의 바람(「할머니 닭의 비상(飛翔)」), “영타기” 공연과 “나후나” 안동 공연을 기대하며 택시에 오른 “거서”와 “거”에 간다는 70대 아주머니들에게 듣는 구수한 사투리(「거서」) 대화를 그린 정겹고 토속적인 재미가 있는 작품들도 있다. 집 나간 아내 때문에 아들을 자기 핏줄이 아니라고 내내 의심하며 보는 사람마다 “닮았니껴?” 묻는 남자(「가을 수박」)나, 아버지는 세상을 버리고 엄마는 서울로 돈 벌러 가고 조부모와 시골에 사는 4남매(「어느 4남매」)의 사연, 「닭의 외출」, 「개망초 꽃 피는」 등의 작품들은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응원하는 작품들이다. 이 모두 봄날, 활짝 피었다가 미련 없이 지는 벚꽃처럼, 언제 어느 때든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낙화」)은 모두 꽃이라는 작가의 환한 눈빛이 빚어낸 작품들이다.
『열쇠 구멍으로 본 풍경』에 등장하는 온갖 동물, 식물, 바람, 눈 등 사계절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은 좋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이 사랑스러움과 연민이 가득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참나리꽃 호랑나비 쓰르라미 장끼 멧돼지 고라니 반딧불이 등 오만가지 동식물에 관한 생명력 넘치는 생태와 서정적인 묘사는 하루에도 수천 종씩 동식물을 사라지게 하는 인간과 지구의 심각하고 냉혹한 환경문제를 절실하게 되새기게 한다. 「까치설날」, 「까치밥」, 「개똥벌레 한가위」, 「시를 읊는 멧돼지」, 「소나무가 아프다」, 「방아깨비 장가든 날」 등 다수의 작품에서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위태로운 현실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밤이건 낮이건 손님이 찾으면 택시를 몰고 세상 밖으로 나선다는 고재동 작가, 그가 “체험 삶의 현장”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열쇠 구멍으로 본 풍경』.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열쇠 구멍으로 세상을 보면 캄캄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 않다. 휘황찬란한 광경도 있고 등대 같은 불빛도 있다. … 어떻게 살다 가느냐는 건 내 맘이다. … 마음먹기에 따라 생이 달라진다. 내 생은 내가 결정한다. 누가 살아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내 생은 내 몫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머리글 「꽃에도 맘이 있다」 중에서)
그렇다. 세상살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비록 힘들어 곧 쓰러질 것 같아도 마음먹기에 따라 조금은 견딜 만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작가가 이토록 재미나고 눈물 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놓은 편 편의 이야기들이 전하는 메시지다. 작가가 참 “씩씩한” 마음을 담아 쓴, 정과 사랑, 희망 가득한 작품들 덕분에 『열쇠 구멍으로 본 풍경』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