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범람하는 시대, 사유하는 글쓰기를 말하다
서점 에세이 매대를 채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사이에 작은 균열을 내는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문학비평가 권성우(숙명여대 교수)의 첫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은 힐링이 범람하는 시대, 다시 한 번 사유를 되짚어 본 책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고민하는 것, 비판하는 것, 상처 위에 반창고를 덮는 대신 상처를 헤집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푸르스름한 저녁.
영화 〈비정성시〉로 시작하여 자이니치 문학의 정수 『화산도』를 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문학과 영화와 사람을 권성우는 특유의 날카롭고도 서정적인 문체로 써내려간다.
에세이는 어떤 장르의 글쓰기보다도 저자의 마음의 결, 체취, 실존, 개성이 살아 있는 글이다.
늘 사유의 힘과 깊은 지성을 갖추면서도 감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은 그 갈증과 소망을 드러낸 책이자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글쓰기의 향연 , 에세이의 도전
평생을 문학에 천착했던 권성우는 산문의 다양하고도 섬세한 결을 풀어내는 데 탁월한 통찰을 보인다. 이 산문집은 그 글쓰기의 정수로서 통상적인 에세이만이 아닌 기행문, 편지, 칼럼, 단장斷章, 추모사 등 산문이 풀어낼 수 있는 수많은 형식에 대한 도전을 담았다. 모국어와 문학, 에세이라는 지평의 가장 내밀한 켜까지 독자들이 음미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 산문집에는 이미 세상을 뜬 고인故人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마음이 자주 눈에 띈다.
최인훈, 김윤식, 노회찬, 허수경 등 작년에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간곡한 추모와 회고의 마음을 담았다.
내게 이들이 존재하는 않는 세상은 그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쓸쓸하다.
명랑하고 다정한 글만이 에세이일 수는 없다. 권성우의 산문은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서글프며 때로는 읽는 이에게 논쟁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사유의 결을 통해 한 편의 글이 한 사람을 담아내고, 다시 한 시대로 이어지는 읽기의 짜릿함을 독자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