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로서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세상의 모든 사서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책!!
제1부 소제목은 ‘내 이름은 문정숙’이다. 그리고 2부 소제목은 ‘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이다. 이 둘을 합치면 ‘도서관 사서 문정숙’이다. 게다가 책 제목에도 자신의 성(文)을 붙였다. 말하자면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세상에 내놓은 첫 자전에세이다.
책의 서문과도 같은 글이 136쪽에 있다. ‘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 글을 보면 학창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여배우 김미숙이 어느 드라마에선가 사서(司書)라는 직업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드라마 속의 그녀가 우아한 모습으로 도서관 한 귀퉁이 서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반해 사서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문헌정보학과로 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사서가 되고 보니 매일 책을 읽으며 우아하게 도서 대출과 반납 일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기대가 산산조각 났다고 고백한다. 도서관에서 매일 보는 건 책 표지일 뿐이고, 프로그램 기획하랴, 수강생 모으랴, 작가 특강에, 공연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사서들끼리는 사서를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칭하다는 고백까지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에세이는 사서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서라 초등학생 대상 동시 프로그램에서 행복을 느끼고, 어르신 대상 한글 문해 교육 프로그램에서 보람을 느끼는 이야기가 책장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또는 도서관을 자주 찾던 한 여성 이용자가 어느 날 문학상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곤 마치 가기 일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올 때처럼 집으로 돌아갈 때도 까르르 함박웃음을 웃었다. 가슴속에 동시 한 편씩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에는 아이들이 뭘 좋아하게 만들어줄까? 무슨 책을 빌려 가고 싶게 만들어줄까? 나는 또 일주일 내내 고민하게 될 것이다.(119쪽)
우리 엄마처럼 허리 굽고 다리 구부러진 엄마들이 아침마다 도서관에 오신다. 우리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글 문해 교육에 참여하는 분들이다. 온전하게 몸 성한 분은 몇 분 되지 않아 삼삼오오 손을 잡고 서로 부축하며 오신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분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유모차에 몸을 의지해 오시는 분들도 많다.(144쪽)
공공도서관 기능은 지난 50년 사이 크게 진화했다. 시험 때나 찾는 공부방 기능을 지나 책의 궁전 시대를 맞았는가 했더니 어느덧 디지털 도서관 기능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장됐다. 《문 사서, 도서관에 꽂히다》엔 그 50년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전히 공부방처럼 기능하는 열람실이 있고, 책을 빌려가는 대출 기능이 있으며, 시청각실과 평생교육 프로그램까지 공존하는 다기능성 종합시설이라 사서들의 역할은 가히 만능이다.
게다가 저자가 관장으로 재직 중인 도서관은 소읍에 있다.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빈약하다보니 공공도서관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할 일이 많다. 그렇기에 또는 보람도 크다. 연간 예산 규모도 서울 지역의 대형 도서관 1회 행사비에 불과하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던가? 예산이 궁하니 더 많은 지혜를 짜야 하고, 인건비를 아끼려니 사서들이 더 많이 뛰어야 하고, 이용자들의 높은 눈높이를 맞추려니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1인 다역으로 치른 문화행사를 마치면 파김치가 된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너무 멋진 행사였다’는 칭찬 한 마디에 또 다시 엔돌핀이 팍팍 치솟는 사서들.
‘내가 근무하는 이곳은 인구 3만이 조금 넘는 소읍으로 극장도, 공연장도, 변변한 평생교육시설도 없기에, 도서관이 유일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만큼 지역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는 도서관으로 향한다.(201쪽)
이처럼 유쾌하고, 활기차고,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곧바로 다시 활력을 찾는 이야기들이 책장 곳곳을 수놓고 있다 보니 일종의 ‘도서관사용설명서’로도 족한 책이다. 이용자들이 몰랐던 도서관의 속살이 완벽하게 드러나 있는가 하면, 영어로는 ‘Librarian’(라이브러리언)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司書’(사서)라고 쓰고, 우리말로는 ‘사서’라고 읽는 도서관지기들의 보람과 행복과 애환과 왜 ‘사서 고생’인지 그 속내까지 솔직하게 정리한 에세이라 작가의 바람대로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한 책이다.
어느 날 대출대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 남학생이 서가에서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이 라는 책을 뽑아 들고나왔다. 이 책 역시 성적 묘사가 과감하다. 따라서 중학생들이 읽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책 중의 하나였다. ‘이건 학생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 같다’고 조언하며 슬그머니 그 책을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다행히 그 학생은 내 말에 쉽게 수긍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대처를 하면서도 나는 내 행동에 자신이 없다.(150쪽)
이 책은 또한 독서를 권하는 ‘책향 안내서’로도 족하다. 사서 읽은 사서의 책 이야기와 사서 선물한 책 이야기가 가득하고, 도서관 서가에서 만난 한 권의 귀중한 책 이야기와 도서관 이용자들의 좋은 책 추천 응대를 위해 직업적으로 읽은 책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간서치적 책내음이 가득하다.
또 책과 함께했던 ‘제주 나 홀로 여행 이야기’를 비롯 종종 대자연 품에 안겨 사색에 취했던 글들이 맛깔스럽다. 작가의 어릴 적 추억과 32년차 전문 직종의 커리어 우먼 이전에 한 사람의 딸로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표현한 글들에선 울컥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의 옛 친구들과 동심으로 돌아가 아날로그 순정시대를 복원하는 글들에선 덩달아 자신도 모르는 흥취에 빠져들게 된다.
부모님의 오래되고 낡은 사진첩을 펼쳐본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논두렁에서 상고 머리한 동생과 함께 서 있는 모습, 긴장한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한 초등학교 입학 기념 가족사진, 고등학교 시절 한껏 불량한 태도로 계단에 걸터앉아 세상을 노려보는 모습, 불우했던 시절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술에 취한 호기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등……. 사진 속의 젊은 아빠가 웃고 있다. 사진 속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엄마도 있다.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66쪽)
이 책의 또 다른 성격은 32년차 전문직 여성 직장인의 은퇴 전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아날로그 도서관 마지막 세대이자 디지털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미래형 도서관 첫 세대 사서로서, 이른바 공공도서관의 ‘마처세대’를 경험한 작가는 은퇴 후 작은 책방 주인을 꿈꾼다. ‘사서 고생’에서 ‘사서 고난’을 택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책이다. 책이 좋아서다. 작가는 초등학생 이후 50년가량을 애서가로 살았다. 동화와 동시를 지나 청년시절엔 문학에 빠졌고, 대학시절엔 인문서와 연애했다. 그러면서 택한 평생 사서의 길. 작가는 이번 책이 “수면 위 모습은 평온해 보이나 물 아래 발짓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백조처럼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서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연, 그럴만한 책이다. 1부 31편과 2부 34편 등 전체 65편의 솔직담백한 문장 행간들에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사랑하고, 도서관지기로서의 삶을 사랑한 32년차 사서의 ‘기승전 + 도서관 이용자 사랑’이 가득한 책이라 일반 독자들도, 미래 사서들도, 이미 은퇴한 사서들도, 당연 현직 사서들에게도, 매우 유익할 책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