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여명을 밝히는 망치질 소리를 가슴에 새겼다”
여러 삶이 묵묵히 타인의 터전을 세우는 곳이자
자기의 생을 온전히 감내하는 곳
그저 건축토목과를 나온 뒤 해외 연수가 있다는 말에 현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현장 일이 고되다는 걸 알았지만 그저 간절하게 입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건설 현장은 서로의 이익이 얽히고설켜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근로자들이 수많은 재해에 쉽게 노출되는 곳이다. 고되다는 하나의 형용사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여느 사업이 그러하듯이 건설업이 없다면 도시는 수많은 일터와 거주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저자 또한 고단한 업무와 중요한 일이라는 양가감정에 휩싸이기를 수차례였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한 현장, 새벽 여명을 밝히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쨍쨍쨍. 나보다 더 이르게 현장에 나온 목수 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이른 새벽의 어둠을 가르듯 망치로 못을 박고 있었다. 오후에 철근 작업 팀이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해가 뜨기도 전에 나와 있는 거였다. 캄캄한 현장에 이른 아침의 빛을 불러오는 듯한 소리였다.
순식간이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억울함과 섭섭함, 분노조차 사라졌다. 내가 했던 고민과 불만, 두려움이 현장에서, 근로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 깨달았다.“
-21쪽
이익을 분배하고 그만큼 움직여야 하는 일에 피로함을 느끼더라도 어느 순간 냉정하게 현장의 중요성과 근로자들의 피와 같은 땀의 가치를 존중하게 된 계기는 망치질 소리였다. 주말부부를 자처하게 되는 수많은 지방 근무, 재해 속에서 잃은 사람들, 계절마다 고단한 업무 등등 쏟아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삶의 기틀이 될 장소라는 것을 새벽을 가르는 망치질 소리에 깨닫게 된 것이다.
“삶의 고군분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사람의 생에 이토록 다양한 희로애락이
단숨에 지나칠 수 있을까?
현장에는 숱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친다. 아침마다 셰퍼드 한 마리와 현장 정문을 지키며 공사를 막는 주민, 암소의 유산이 현장 때문이라는 어르신, 하자 사무실에 아침마다 찾아와 하소연하는 노인과 위험천만한 공사장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 등등 현장에는 그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이 있다. 대개는 문제의 시작이다. 하지만 쉬이 문제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셰퍼드와 함께 공사를 막던 사람은 같은 현장의 근로자가 되었고, 암소의 유산은 현장 근로자들이 합심해 클래식 음악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외부인들과의 에피소드만 있는 건 아니다. 지방에서 만난 동생들과의 여행기, 해외 파견에서 만난 동료와 눈과 비로 어려움을 겪은 현장, 저자 자신의 집 구매기와 어렵사리 결혼하게 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나 저자가 가장 마음 아프게 기억하는 건 단연 함께 일하던 근로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소식을 접한 일이다.
이렇듯 현장에는 수많은 드라마, 소설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 쌓인 이야기를 소환해내며 저자는 사람과의 관계, 일에 대한 신념, 자기 미래를 생생하게 꿈꾸게 되었다. 용기 내어 다시금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생동감 넘치는 시행착오와 경험은 한 가지를 향하게 된다. 지금, 오늘의 현장을, 그리고 ‘우리의 일’을 되짚어보자는 것이다. 그 마음이 바로 이 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책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닌 생생한 이야기로 다가가 현·예비 건설 현장 관리자와 근로자, 그들의 가족, 그곳에 입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법의 테두리를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가닿기를 바란다.”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