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을 끌어안고 헤아리는 시인이
어둠 속 가장 밝은 어둠을 비춘 시에게 보내는 인사
서윤후 시인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본 아름다운 접시에서 킨츠기 공예를 맞닥뜨린다. 킨츠기는 접시에 생긴 세월의 작은 흠집들 사이로, 접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색깔들을 채워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하는 일이다. 시인은 이내 킨츠기를 균열의 자리에서 시작해, 그 상흔을 메꾸는 문학의 일과 나란히 보게 된다.(「킨츠기와 문학」)
시라는 세계에 열렬히 빠졌던 학창 시절부터, 시인으로 쓰며, 문학 편집자로 일하며, 시 수업을 하며 시인은 일상에서 시를 오랜 시간 두루 감각해 왔다. 그러다 시에 들끓던 영원의 순간들에 걸려 넘어진 어느 날에는“완성도 미완성도 아닌 어디쯤에서 삶의 완벽함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겸연쩍은 얼굴을 한 자신을 보기도 했다.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더라도, 타오르던 과정을 증명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일기를 다시 펼쳤다. “불꽃들이 지펴진 자리 뒤로 남아 있는 잔불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시인이 서정적인 언어로 전하는 고요하고 풍성한 시에 대한 사유에는 지금껏 시인 자신을 이끌어온 시의 자국들과 문학이 한 인간을 끌어안는 순간들이 담겨 있다. 문학 속 한 문장과 하나의 시로, 그러니까 어둠을 물리치는 환한 빛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어둠으로 자신의 상흔을 메꾸었던 독자라면, 시가 산란하듯 비추는 “어둠 속 가장 밝은 어둠” 속을 시인과 함께 거닐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작동 방식을 생각하면 한 인간이 가진 상흔이 어떤 형태로 삶을 끌어안고 지탱하며 살아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처 없이 말끔한 영혼도 문학을 펼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나온 그동안의 문학 속 이야기는 상처가 상처를 지나는 이야기였다. 상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 질문이 다른 상처에게로 닿아서 대답을 흉터로 짊어질 때 문학은 아름답고 성실해 보이기도 했다.”
무더기 같은 날들이라도 이름을 붙인다면
그렇게 특별한 날이 되기에
느리게 기록하는 일로써 일기를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쓰는 일은 잃어버릴 각오로 다시 나에게 다가서는 일이다. 시인의 말처럼, “무더기 같은 나날들 속에서, 일기를 쓰고 제목을 달아둠으로 하여금 특별한 날들로 변모”한다. 시에 흠씬 두들겨 맞고도 계속해서 시에게 포옹을 여는 시인은, 계속해서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기로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쓰고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일상을 그렇게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시인의 가장 안쪽을 내보인 이 일기가 누군가에게 여러 번 맺힐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고.
“괜찮은 시간 속에서 괜찮지 않은 곳에 손이 가는 이유는 이유가 맺히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멀어져야 할 것들과, 내가 가깝게 다가서 있어야 하는 것들을 분별하는 시간이다. 은연중에 생각나는 것들에 먹이를 줘서는 안 될 것이다. 내 옆에서, 내 안에서 계속 재잘거리는 것들의 노래에 맞춰 풍경을 간직하는 것. 그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발이 빠지기 좋은 작은 웅덩이 하나를 꼭 그려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