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가 예보되어 있어도 어느 곳은 예보보다 더 궂고 어느 곳은 평온하게 지나갑니다. 인생의 날씨도 똑같습니다. 큰 사건들이 생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습니다. 생은 작은 날씨, 작은 사건, 작은 인연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생의 어느 지점에 도착해서 평온을 얻는 것은 ‘큰 날씨’로 기록되는 큰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서가 아니라 주목하지 않을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들인 ‘작은 날씨’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날씨들의 기억』은 우리 생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사건들, 작은 사물들, 작은 풍경들, 작은 인연들이 가진 따뜻하고 내밀한 의미들을 어떻게 배치해서 ‘생의 정원’과 ‘생의 도서관’을 꾸밀 것인가를 조곤조곤 웅숭깊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은 구름, 작은 바람, 작은 빗방울, 작은 안개, 작은 눈송이가 날 지나갔다. 작은 사랑, 작은 이별, 작은 슬픔, 작은 미련, 작은 회한이 날 지나갔다. 작은 날씨들이 오솔길을 따라 찾아왔다가 그 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아주 떠난 건 아니었다. 작은 주름, 작은 흉터, 작은 문신을 남겼다. 생은 작은 날씨들의 기억이다.
파란만장은 치유의 대상이지 삶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삶은 주목받지 못하는 일상이 채워주고 치유해준다. 자작나무를 타는 일이나 작은 가지가 눈을 때리는 일 같은 작은 일상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 알맞은 사랑은 일상성으로서 빛나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