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개 도시국가의 흥망성쇠 속에서,
여전히 통하는 인류 보편의 정치원리를 발견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정치 지형도는 무척 복잡했다. 그리스 본토에만 100여 개, 식민지까지 합하면 1,000여 개가 넘는 도시국가들이 존재했고, 각 도시국가마다 독특한 정치체제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158개 도시국가들의 정치체제를 면밀히 연구하여 보편적인 정치원리를 찾고자 했다. 그는 단순히 이상적인 국가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의 역동성과 한계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스파르타의 군사적 과두정, 아테네의 급진적 민주정, 카르타고의 혼합정 등 다양한 정치체제의 장단점을 분석한 결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찾은 것은 바로 중용의 지혜였다. 지나친 과두정은 소수에 의한 전제정치로 귀결되고, 극단적 민주정은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 오직 시민들의 덕성 함양과 법의 지배를 통해 안정과 번영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통찰의 결론이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질과 책임감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 민주적 토론과 합의의 중요성 등은 그가 강조한 인류 보편의 정치적 지혜로, 2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와 인공지능의 결합과 연결 속에서
지금도 탐구될 가치가 있는 인간 사회의 조직 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국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룬다. 국가는 인간의 본성에 의해 구성되는 최고의 공동체라고 규정하고, 이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2권에서는 당대의 여러 정치 사상가들이 제시한 이상적인 국가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 상세히 논박한다. 3권에서는 시민을 정의하고, 바른 정체(政體)와 잘못된 정체를 구분하고, 4권에서는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 등 다양한 정체의 유형과 특징을 분석한다.
5권에서는 정체의 변화 원인을, 6권에서는 민주정과 과두정의 조직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7권에서는 최선의 국가가 어떤 것인지 탐구하고, 이를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며, 마지막으로 8권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상적인 교육 방식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8권에 걸친 방대한 서술 속에서 그는 인간과 국가에 대한 심층적 물음을 던진다. 국가는 왜 필요한가? 좋은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시민은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가?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고대 그리스를 넘어 모든 시대의 정치 공동체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화두들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은 국가와 개인, 정치체제, 시민, 교육 등 폭넓은 주제를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하고, 국가를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필연적 조건으로 본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강조하는 근대 사상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다. 단순히 관념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례를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도 높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비판하고 현실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그의 접근법은 정치학을 경험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발견한 원리 중 하나는 정치체제의 순환이었다.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은 일종의 순환 고리처럼 등장하고 소멸한다. 이 순환의 동력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간 끊임없는 긴장과 투쟁이다. 이는 근현대 혁명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역동성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안정적인 정체로 ‘중산층’이 두터운 혼합정을 제시한다. 귀족과 평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정치, 법의 지배가 구현된 공동체야말로 이상적이었으며,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규범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인 오늘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졌다. 거대 담론의 해체, 가치관의 혼재 속에서 우리는 자칫 상대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위협받고 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확산, 포퓰리즘의 대두 등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인간과 국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현실을 직시하되 소통과 합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적 자세, 개인의 윤리와 공동체의 비전을 함께 사유하는 종합적 관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면에서 2400여 년 전, 피묻은 정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은 여전히 울림이 있다.
인류 최고의 사상가가 내놓은 생생하고 현실적인 통찰,
우리가 지금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철저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생생한 역사적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은 시종일관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치학』의 가장 큰 매력은 이론과 실제의 완벽한 조화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58개 폴리스의 구체적 사례를 토대로, 정치공동체 일반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이뤄냈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58번째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펴내면서,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우리말로 들려주는 듯한” 생생하고 잘 읽히는 번역으로 선보이고자 최선을 다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수사학』, 『시학』을 옮긴 고전어 번역 전문가 박문재 선생의 꼼꼼한 번역과 함께, 가독성 높은 편집으로 독자에게 선보인다. 읽으면서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되돌아가 몇 번을 다시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물 흐르듯 읽히는 데 역점을 두었다. 주요 개념어 설명을 포함한 404개의 상세한 역주, 내용 전반에 대한 30쪽에 걸친 깊이 있는 해설, 읽기 편한 지면 편집 등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세심한 노력은 독자들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감동을 줄 것이다.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대비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적 관점은 특히나 요구사항이 첨예하고 복잡다단한 이익단체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오늘날 정치 현장에서 실천적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치밀한 경험주의야말로 『정치학』의 가장 큰 매력이자,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