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칼에 깃든 아름답고 다정한 이유
펜싱은 칼끝으로 상대를 반드시 찔러야만 득점할 수 있는 게임이다. 과거에는 진검으로 게임을 하다가 상대의 칼을 막지 않고 서로 찌르기만 해 선수들이 모두 사망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펜싱 종목 중 하나인 ‘플뢰레’는 그런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칼끝에 찔려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꽃 모양의 버튼을 단 연습용 칼을 만든 것이다. 칼로 상대를 찔러야 이길 수 있는 스포츠이지만, 반대로 상대를 해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칼은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마음. 칼에게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누군가를 생각하게 한다. 김민성 작가 산문집 《플뢰레》는 작가 본인이 직접 다루는 날 선 도구에서 다정한 이유를 발견하고 섬세한 마음을 덧붙인다. 지난한 경험들이 축적된 작가만의 단단한 문체로 펜싱이 이토록 다정하고 아름다운 스포츠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두려움에 주저하지 않고 지금의 피스트 위에 설 수 있기까지
쌓아 올린 시간들이 증명해 낸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
“실력은 외부 요인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실력을 결정하는 건 평소 해온 훈련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펜싱의 전부라고 믿는다.” (33p)
김민성 작가는 스무 살,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펜싱을 시작했다. 대개 어린 나이부터 펜싱을 시작하는 펜싱 선수들과는 출발 지점이 조금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선수 출신들을 꺾고 동호인 출신 최초 엘리트부 우승을 거머쥐었다. 펜싱 하나만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나갔기 때문에 이뤄낸 가치 있는 결과들이었다. ‘출신’이라는 무의미하고 낡아 빠진 경계선을 오로지 실력으로 깨부순 것이야말로 작가 삶에서 가장 빛나는 산물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혹독했던 훈련량과 물러서지 않았던 마음들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증명이기도 하다. 펜싱은 평평한 피스트 위에서 상대와 겨루는 게임이지만 그곳은 거칠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큰 곳이다. 우리 삶도 매일 오르막길을 오르는 버거운 기분이지만 작가는 그런 순간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서 있는 피스트 위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상실하고 주저앉으려는 순간 작가의 단단한 글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바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온몸으로 무언가를 진하게 사랑하고 있을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사려 깊은 응원
“나로부터 뻗어 나간 꽃이 상대의 가슴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기를.” (37p)
칼에 플뢰레, 꽃이라는 이름을 달아준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작가는 언제나 칼끝에 꽃을 달아준, 칼을 꽃이라 이름 붙여준 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펜싱을 해왔다. 이것이 작가가 주어진 순간들을 마주하는 다정한 태도인 것이다. 책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사유들은 칼처럼 곧게 뻗어있고, 단단하고, 아름답다. 펜싱이 작가에게 멋진 인생을 선물해 준 것처럼 이 책에 담긴 기쁨과 환희, 두려움과 슬픔, 이 모든 감정의 총체들을 통해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작가의 글은 온몸으로 무언가를 부단히 사랑하고, 아팠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려 깊은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