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
이 책은 물(Aqua), 불(Ignis), 흙(Terra), 바람(Ventus) 네 장으로 나뉜다. 물에서 태어나 불같이 타오르며 세상을 향해 맞섰고, 과학적인 여론조사야말로 민주주의 뿌리라며 여론조사의 주춧돌을 놓고 바람처럼 사라진 박무익의 생애를 물과 불, 흙, 바람으로 구성한 것이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문헌 연구의 성격을 띤다. 직접 현장을 찾아 보고 느낀 기록을 제외하면 한국갤럽의 발간물과 각종 관련 서적, 참고 자료, 언론 인터뷰 등을 입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4장은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 박무익을 탐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장 ‘Aqua 큰 바다로 흐르다’는 발품을 팔아 현장 중심으로 엮었다. 박무익 회장의 생가 탐방부터 출신 초중고, 대학까지 물리적인 공간을 망라했다. 1943년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경산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열 살 무렵 이주하여 중학교에 다녔던 포항 구룡포,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거주했던 대구를 직접 찾아갔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박무익 회장은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많은 연못이 둘러싸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포항의 동쪽 끝 마을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타며 꿈을 키웠고, 대구로 또 서울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 세상이라는 큰 바다에 닿은 것이다.
2장 ‘Ignis 불꽃이 튀다’는 한국갤럽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고의 고생 끝에 어엿한 대한민국 최고의 조사업체로 성장한 한국갤럽의 성장기를 담았다. 박무익 회장은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하여 카피라이터로 인정받고 한동안 광고업계에 종사하다가 1974년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인 KSP(Korea Survey Polls)를 설립했다. 조지 갤럽 박사의 책을 직접 번역하면서 갤럽과 인연을 맺었고 1879년 갤럽 인터내셔널 회원사가 되면서 사명을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개칭했다.
3장 ‘Terra 민주주의의 토양이 되어’는 한국갤럽이 내놓은 성과, 결과물에 초점을 뒀다. 한국인에게 한국갤럽과 여론조사의 위대함을 알린 크고 작은 조사 결과물, 언론과 한국 사회의 반응 등을 담았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예측에 도전하여 적중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다. 정치 여론조사뿐 아니라 한국인의 사회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보는 국제 비교 조사를 해왔으며, 장애인과 일반인 의식 조사, 한국의 종교 실태 조사 등을 오랜 기간 수행하여 단행본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무익 회장이 한국갤럽에서 이룩한 무수히 많은 업적이 담겨 있다.
4장 ‘Ventus 세상을 감싸다’는 박무익 회장을 아는 각계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인간 박무익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엮었다. 이 과정에서는 평전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박무익 회장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만 골랐다. 라종일 주영·주일 대사, 마동훈 고려대 신방과 교수, 김명신 명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명예교수,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노익상 한국리서치 회장 등 많은 분과 인터뷰를 통해 들은 박무익 회장에 대한 회고를 정리했다.
“박무익이야말로 평전이 필요한 삶을 살았다. 난 정치학자다. 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박무익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라종일 전 주영·주일 대사)
이 땅에 여론조사의 꽃을 피우고 나아가 정치 민주화에 초석이 된 박무익 회장은 2017년 4월 지병이 악화하여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조사는 결코 화려하거나 스스로 빛나는 업(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관행과 시류에 맞서야 하고 비난과 질시를 묵묵히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이라고 말한다. 시대를 앞서 조사인으로서 걸어간 박무익의 회장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여론조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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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익
1943년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포항과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경북대 사대부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인정받았다. 이후 한동안 광고업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1974년 6월 국내 최초의 전문 조사회사 KSP(Korea Survey Polls)를 설립했다. 1979년 갤럽 인터내셔널(Gallup International Association) 회원사가 되면서 사명을 한국갤럽조사연구소(Gallup Korea)로 개칭해 오늘에 이른다. 일찍이 다국적 기업 프로젝트를 주로 하며 국내 마케팅 조사 분야의 지평을 넓혔고, AD-Score(광고 테스트), POS Store Index, 자체 개발 TV 시청률 측정 시스템 등을 선보이며 기술적 진보도 이끌었다. 1987년 국내 최초로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 적중하면서 한국인들을 경악게 했다. 특히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예측에서는 당선자 기준 오차 0.4%포인트를 기록, 당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세계 조사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훗날 여러 분야를 연구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는 믿음하에 1980년대부터 자체 조사 결과로 단행본, 정기간행물 등 50여 권의 책을 펴냈다. 1990년대에는 국내 최초로 조사 결과 전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2012년부터는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이라는 자체 조사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왔다. 조사업계와 학계 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92년 8월 한국조사협회 설립에 주축 역할을 했고 1997~1998년 3대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한국조사연구학회와 함께 한국갤럽논문상을, 2006년에는 한국통계학회와 함께 한국갤럽학술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3년 통계의 날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2017년 2월 병상에서 마지막 저서 《조사인으로 살다: 박무익 회고록》을 탈고했고, 그해 4월 19일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