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서 피어나는 꽃, 머내여지도!
시작은 우연했다. 2016년 통영 ‘남해의봄날’ 서점에서 그 마을의 지도를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 있었다. 그 이후 머내의 동네 서점 ‘우주소년’ 사장님과 논의를 해오던 중, 마을 사업 ‘모두학교’를 기회로 머내여지도팀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모임이 계속되며 머내여지도팀은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머내의 이야기를 조명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옛 문헌을 통해 머내가 품은 역사를 되살렸다. 주민들과의 인터뷰로 기억 속 머내와 머내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잊혔던 머내 인물을 오래된 신문에서 발굴해 종적을 되짚어 보았고, 머내만세운동의 흔적을 좇아 그 뜻을 우뚝 세웠다.
‘함께 마을에 대해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모임’ 머내여지도팀의 『우리 손으로 만든 머내여지도』는 이처럼 익숙한 우리 동네 ‘머내’를 새롭게 보는 책이다.
우리 동네 ‘머내’, 역사·지리 이야기로 새로 보기
머내는 과거 어떤 동네였을까? 옛 선조들은 어떻게 불렀으며, 흘러간 시간 속에 머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순우리말 ‘머내’는 우리 주민들에게 친숙하지만, 속뜻과 어원에 대해서는 주민들 가운데서도 자세히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 유래를 조사하기 위해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머내의 옛 표기 ‘험천’과 ‘원우천’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침략에 결진했으나 패하고 말았던, 충청도 근왕군의 ‘험천전투’를 마주한다. 그리고 300년 전에 세워진 ‘험천전투 위령비’와, 위령비를 세우고 기우제를 지냈던 진재산 용바위를 추적하는 지리적 상상력에 매혹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머내여지도팀은 실록을 탐구하고 고지도를 들추며 직접 현장을 답사했다. ‘머내 찾기’ 행적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독자들은 머내에 얽힌 흥미로운 연혁뿐만 아니라, 머내여지도팀이 거쳤던 여정 속에도 함께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동천동과 고기동, 쉼 없이 이어지는 머내 이야기
머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에게는 공장이나 아파트 개발보다 농사에 대한 기억이 더 뚜렷하다. 지금은 마을 도로 대부분이 포장되어 비좁은 골목을 찾기 어렵지만, 1960년대만 해도 마을 길은 온통 흙길이며 돌길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거치며 머내는 공장지대가 들어섰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올라왔다. 척박한 농촌 지역 머내는 이렇게 소규모 산업도시로 발전해 갔다.
머내 지역의 변모는 한국의 현대화 과정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 염색공장 탓에 더러워진 동막천의 악취, ‘난개발’이라는 비난과 함께 세워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라진 깻잎 냄새와 뿌리가 잘린 은행나무……. 20여 년의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 다수가 다른 곳으로 떠났고 신축 아파트에는 매년 새로운 전입자들이 대거 입주했다. 이런 머내에서 누군가는 질문한다. “옛날이야기가 무슨 소용이고?”
언뜻, 옛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찾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그러나 그 노정 속에서 마을의 과거가 그려지고, 사라진 풍경들도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여행객들에게 쉬어갈 곳을 제공해 주던 동천동 주막거리, ‘염광농원’의 빛과 그림자, 신앙을 지켰던 손골 교우촌 사람들, 사람을 향한 고기교회와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나눔을 배우는 밤토실어린이작은도서관까지, 동천동과 고기동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머내만의 역사를 간직하며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 독립 만세!” 스스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고기리와 동천리에 만세운동이 일었다. 100명에 불과하던 시위 인원이 1500~2000명까지 불어나 일본 헌병이 ‘총격’으로 대응했던 만세운동을 주민들은 머내만세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날 머내 거리에는 밤마다 홑이불을 찢어 그렸던 태극기가 휘날렸다. 동막골에서는 오랫동안 세거해 왔던 주요 가문의 일원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하손곡에서는 천도교인들이 힘을 모았다. 머내만세운동은 10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지역민들의 시야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만세운동의 정확한 양상 파악을 위해 머내여지도팀은 애국지사 후손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경성지방법원의 판결문, 조선소요사건일람표, 범죄인명부 등 일제강점기 기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을 두루 조사해 만세운동 지도자와 행진 과정, 그 이후의 씁쓸한 후일담까지 정리해 글로 담았다.
그 전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머내여지도팀은 자발적으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나라에서 마을 사람 15명을 새로이 애국지사로 서훈한 일, 과거 이 마을에 크게 번성했던 동학과 천도교의 흔적을 확인한 일 또한 큰 소득이었다. 머내만세운동은 용인 지역을 넘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면 또는 리(里) 기초단위 만세운동의 전개를 엿볼 수 있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
머내 밖 독자들도 그들만의 ‘○○여지도’ 작업에 자신감을 얻기를!
『우리 손으로 만든 머내여지도』는 이처럼 용인의 동천동과 고기동 역사·지리 이야기를 품은 책이다. 또한 머내여지도팀이 우리 마을을 찾는 발자취가 담긴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옛 공동체는 깨지고 새 공동체는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세상에서 머내여지도는 과거 우리 공동체의 흔적을 들여다본 작업이다. 부디 이 이야기가 머내 지역 ‘마을 만들기’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나아가 머내 밖 독자들도 ‘이 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품고 다른 ‘○○여지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혹은 머내의 정보를 주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여지도’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 책과 함께 머내 탐방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