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살아가는 곤혹스러움 속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손을 내밀어 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갈 때 한 번쯤은 곤혹스러운 순간을 마주한다. 대학 졸업 후 간 면접 자리에서 “결혼 할 거냐”라는 면접관의 뜬금없는 질문을 마주할 때가 그렇고(「면접에서 말하지 않는 것」, 단지 긴 머리가 거추장스러워 커트 머리를 했을 뿐인데 ‘여자답지’ 못한 외모에 대한 주변인들의 간섭을 마주할 때가 그러하다(「커트의 시간」). 때로는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사이에서 기우뚱한다. 작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여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가족을 위해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는 것에 익숙한 여성들은 자신의 힘들고 외로웠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런 여성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당신이 느낀 건 중요해요. 별것 아닌 건 없어요. 당신에게 중요한 걸 쓰세요. 지금 떠오르는 당신의 얘기를!”(「글을 쓰는 여자들」)
작가의 어머니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과 다정하게 말을 나누는 것이었다. 절대 속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어머니가 잠깐 말을 붙이면 살아온 내력을 그 앞에서 쏟아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도라지를 까는 가겟집 주인을 돕느라 더 늦은 귀가를 하는 어머니는, 집으로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는 어머니는 자기 삶과 남의 삶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존중하면 돼. 사람들은 대부분 존중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거든.” 작가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다정함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따뜻한 눈인사와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누며 부서진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 주변에서, 또는 인터뷰를 통해, 혹은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대개 우리의 눈길이 잘 가닿지 않는 곳의 사람들이다. 중국에서 온 이주여성 메이는 결국 ‘한국 엄마들’ 사이에 끼지 못했고, 캄보디아인 알렌은 한국 국적이 없어 아기의 보육료를 제때 지원받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아기를 캄보디아로 보내야 했다. 청계천을 떠나지 못하는 아주머니는 건물의 계단참에서 노숙을 하며,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주민들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피켓을 든다. 한부모 여성들은 이혼에 대한 사회의 공고한 편견과 부딪히며 살아가며, 빈방에 틀어박혀 개와 함께 지내는 여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집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차별과 배제, 혐오 속에서도 삶의 온기를 기꺼이 나누면서 사랑하며 살자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연결과 연대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렇듯 작지만 연결된 존재들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