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경험하는 순간 -이귀자
설악산 정상은 아직 흰 머리를 골짜기마다 드러내고 있고, 낮은 대지의 2차선 도롯가에 벚나무 가로수는 연분홍 꽃을 가지가 보일세라 가득가득 꽃봉오리를 맺어 꽃구름 속을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꽃가지 위에 앉아 몽실몽실한 꽃을 구름 삼아 노닐고 싶은 봄날입니다.
강원도의 작은 시골에 조그마한 가게를 하면서 근근이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던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된 스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열정을 쏟아 강의를 하시는 중이었는데, “나의 조상의 뿌리를 알아보세요” 하는 말씀을 혼을 담아 토해내고 계셨습니다. 저도 삶이 고단하고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의를 다 듣고 나서 평생 한 번 하는 천도재, 나도 한번 해보자는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고단하고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렵게 인연이 닿았고, 그렇게 하나둘씩 배워가며 학문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절에 다니고 있었던 저는 크게 종교적인 괴리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스님과 인연을 닿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될 때까지 3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3년 후 평생 한 번 하는 천도재를 하게 되었고, 그 후 3주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 국가보훈처에서 아들이 순직 처리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첫 번째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평생 숙원이었던 숙제가 한 번에 기적처럼 해결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보살님 3년 발복기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말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하고 그때부터 소소한 일상의 작은 문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결이 되었고, 수많은 기적 같은 일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3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딸아이가 직장을 옮겨 승진하였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그 시기에 이렇게나 쉽게 이직하다니, 그때의 감정을 회상해 보면 “뭐지,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기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약간의 허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은 같이 나에게 왔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하면서 짊어진 커다란 채무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은행거래 한번 할 수 없는 신용 불량자로 은행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던 제가 30년 된 오래된 채무를 개인회생으로 신용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기 전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파산을 진행했었지만, 반려되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일들이 일상의 곳곳에서 생활처럼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일파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생 한 번 하는 천도재, 진짜 천도재의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랜 인연으로 일파 큰스님께서 “소원이 뭡니까?” 하고 말씀하셨고, “딸아이가 외국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 하는 일보다 수입도 좋고 몸으로 하는 노동 수입이 아닌 시스템 소득을 얻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의 대답은 간결하고 짧게 “알겠습니다. 해보지요.” 이렇게 큰스님과 대화가 끝났고 또 다른 인생 2막이 펼쳐지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시골 지방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취업이 되어 지금은 멀리 동유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사업을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사업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예상보다 빨리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공자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자유와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라는 구심체에 의지하게 됩니다. 종교에 기대어 스스로 위로받고 살고 있습니다. 종교에 기대 위로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나의 부모님이 잘 가셨는지 잘 못가셨는지 꼬옥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이미 흘러간 물을 퍼 올릴 수 없는 그것처럼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이 나의 인생이 변합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