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우면서도 진지하게,
웅숭깊으면서도 경쾌하게
시인이면서 중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배수연의 글은 어딘가 조심스럽고 수줍으며 절제된 듯 보이지만, 이 책 곳곳에서 그가 삶에서 느끼는 강렬한 기쁨과 호기심이 제어되지 못하고 툭툭 터져 나온다.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은 그의 언어와 상상력을 통과하면서 흥분과 즐거움으로 가득해지고, 우리 마음에 활기와 신명을 불어넣는다. 그가 출근길에 이용하는 사람들로 빽빽한 마을버스는 그의 상상 속에서 커피와 도너츠가 놓인 왁자지껄한 매장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 마법의 버스가 되고, 승객 모두는 짧은 일탈을 즐긴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둠칫둠칫 자신만의 어깨춤을 추며 일상에 복귀하는 식이다. 이런 소란스러움과 난리법석 속에서 고요히 질문하고 성찰하는 나와 우리. 그것은 바로 안은미와 그가 보여주는 춤의 본질이기도 하다.
안은미는 사회가, 시대가 개인에게 부과한 통념과 억압에 맞서 당당하게 질문해온 예술가이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스스럼없이 버림으로써 외현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본질을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자신만의 요란하고 통쾌한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갇혀 있고 정체되어 있던 수많은 에너지를 사방에 퍼뜨리고 흘려보냈다. 배수연의 첫 에세이집 《요정+요괴, 찐따》는 이런 안은미의 예술 세계에 대한 사랑의 헌사이다.
모두의 것인 동시에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몸과 말의 세계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어린 시절, 배수연 시인은 “발레라는 단어가 주는 판타지”(〈사과춤 딸기춤〉)에 이끌려 여동생과 무용 학원을 처음 찾았지만 또래보다 큰 체격으로 인해 어리숙하고 둔할 거라는 선생님의 선입견 속에 얼마 안 가 학원을 그만둔다. 그러다 미술과 철학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우연히 친구를 통해 접한 한국무용가 김영희의 공연을 통해 ‘춤’을 재발견하고,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낯선 파장이 툭, 내 안의 단단한 심지를 부러뜨렸다. 분명 몸으로 감각할 수는 있지만, 인식 안에서 해석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무엇이었다. 당황했다. 만져지지 않는 검은 불길처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슬픔에 덴 것만 같았다. 그 불길이 강렬하지만 아득해서, 눈물이 흘렀고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_〈인생은 엉뚱하게〉 중에서
그리고 이제 그는 세상 만물에서 춤을 발견하고 호흡하고 체현한다. 수영 강습 시간에 천천히 줄지어 도는 ‘걷기’에서, 오십일 된 어린 조카의 사소한 동작에서,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동주 시인의 〈강강술래〉와 난데없이 우체국에 나타난 사마귀를 발등에 태워 화단으로 돌려보내려는 직원의 움직임에서 배수연 시인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한 자유로운 현대무용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춤에 대한 이해는 사회가 정해놓은 경계나 틀을 무람없이 뛰어넘는 안은미의 세계와 자연스레 이어진다.
1991년 〈도둑비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삭발한 안은미는 자신을 에워싸던 제약을 하나하나 깨뜨려나갔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굴레를 던져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라고 부추긴다. 그는 일반인들을 등장시킨 다수의 작품을 통해 무대 위에 홀로 존재하는 예술이 아니라 삶 속에 개별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두의 삶을 풀어낸다. 이런 안은미와 그의 춤 세계는 배수연에게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전복顚覆의 경험을 안긴다. 그는 어느 날 안은미의 공연을 보고 나서 느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이렇게 묘사한다.
호외요 호외!
당신이 사람이거나 귀신이라면 꼭 봐야 할 공연!_〈서문〉 중에서
그리하여 “방 안에 개미 한 마리만 있어도 쑥스러워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서문) 이지만, “성당에서 미사곡들을 듣고 부르는 순간에는 일렁일렁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드는(〈성전에서 춤을〉) 시인은 안은미에 대한 예찬을 이어간다. 당신이 안은미를 전혀 몰라도 괜찮다고, 당신이 안은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직 당신은 안은미의 신작을 볼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의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