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벽의 빛과 새를 나는 지금 은유로 읽으려고 한다.
시의 언어는 말하자면 그 빛이나 새와 같은 것이다”
─생생한 삶의 체험에서 나온 시에 대한 지금-여기의 증언
가장 멀리는 1975년부터 가장 가까이는 2002년까지, 1965년 문단에 나온 이후 자신만의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며 왕성하게 활발한 시기에 써 내려간 시인 정현종의 삶과 시, 예술과 책에 대한 ‘음미’의 흔적이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전 제목이었던 “날아라 버스야”는 산문집 2부 마지막 글인 「아름다움에 대하여」에 실린 시의 제목으로, 1999년 출간된 시인의 시집 『갈증이며 샘물인』(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되어 있다. 「아름다움에 대하여」가 씌어진 1997년 당시, 버스에서 꽃다발을 든 사람을 둘이나 본 시인이 “그 꽃들이 버스 안을 환히 밝혀, 여기가 달리는 낙원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나서 그날 저녁 써 내려간 시가 「날아라 버스야」라고 시인은 밝힌다. 또한 이번 제목이자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빛-언어 깃-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3부의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에는 새벽 숲을 걸었던 시인의 경험이 그려진다.
아직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새벽, 숲길로 걸어 들어가 길을 더듬어 가는데, 동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동트면서 오솔길이 하얗게 떠오르고 나무들의 초록빛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내 감격을 위와 같은 미지근한 산문적 서술은 전혀 담아내지 못하지만 그때 나는 이 세상이 매일같이 새로 창조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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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니라 후투티라는 새가 저 앞 오솔길 위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목털을 곤두세우면서 날아올랐는데, 그 순간 내 속으로 그 새가 이 지구를 두 발로 거머쥐고 가볍게 날아올랐다는 느낌이 지나갔다. 그 새는 말하자면 신화적인 새였던 것이다.
그 새벽의 빛과 새를 나는 지금 은유로 읽으려고 한다. 시의 언어는 말하자면 그 빛이나 새와 같은 것이다. 시는 바로 빛-언어이며 깃-언어이다. 되풀이할 것도 없겠지만, 사물을 새벽의 여명처럼 창조하는 말, 끊임없는 시작으로서의 말, 빛 속에 떠오른 하얀 숲길 위에서 날아오른 그 새처럼 무겁고 무거운 걸 가볍게 들어 올리는 말-시는 그러한 말이며,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시인은 자연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시와 시에 대한 생각을 만난다. 그것은 시를 ‘사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현종 시인이 6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활발하게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의 시는 물론이거니와 산문 또한 50년 전, 20년 전 씌어졌어도 여전히 ‘현재’의 생생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빛’과 ‘깃’, 그의 언어가 바로 자연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훼손하지 않는 한, 거기 그렇게 늘 현재로 존재하는 자연의 언어가 바로 정현종 시인의 언어다.
『빛-언어 깃-언어』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물, 현상, 시에 대한 시인의 한결같은 시선과 그 시선이 담은 소회를 진솔하고 깊이 있게 전한다. 1부 ‘현재를 기다린다’에는 유년과 대학 시절을 포함한 과거의 추억, 그때에 잊지 못할 장면과 사물에 대한 단상, 그 시절 시인의 시간을 채웠던 독서의 경험, 인간과 세상사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2부 ‘추락이여, 안녕’은 저자의 예술론이 담겨 있는데 춤, 몸, 바람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3부 ‘빛-언어 깃-언어’는 시인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시론과 함께 외국 시인들에 대한 시인론이 실려 있다. 네루다, 바예호, 로르카는 정현종 시인에 의해 국내 독자들이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된 시인들이기도 하다.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공감 어린 술회는 현실을 가볍게 날아올라 시적 비상을 보여주었던 시인들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뛰어난 시인론으로, 다시 한번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