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을 통해 본 한국 대중음악사 100년사
우리 대중음악은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냉전, 민주화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에 함께하며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로 대중을 위로해왔다. 한마디로 우리 대중음악도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에 ‘가수 남진’이 있었다. 남진의 첫 책인 『오빠, 남진』은 남진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한국 대중음악의 이야기이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통해 본 남진이라는 가수의 이야기다.
가수 남진은 ‘오빠 부대’의 원조격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 나훈아와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슈퍼스타이다. 1965년 데뷔해 2024년 기준 데뷔 60년 차이며, 79세인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024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성황리에 열린 데뷔 60주년 디너쇼는 남진이 가요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여전히 레전드급 활동을 이어가는 현역가수임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남진의 데뷔부터 영화배우로서의 활동, 해병대로 월남전 파병, 도미, 대한민국 톱스타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했던 시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남진의 시대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를 톺아보았다. 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며 노래를 만들어갔던 과정, 영화배우로 활동할 때의 에피소드 등 이제껏 풀지 않았던 ‘오빠 남진’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왜, 인제 와서 남진인가?”
남진(본명: 김남진, 본명 한자: 金南鎭, 1945년 9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5년에 가수로 데뷔한 이후로 1967년부터 1977년까지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활동했다. 1969년 제12회 부일영화상에서는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주요 히트한 노래로는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너와 나〉, 〈미워도 다시 한번〉, 〈둥지〉와 장윤정과 부른 〈당신이 좋아〉 등이 있다.
남진은 해방둥이로 태어나 1960년대 데뷔해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목포일보의 발행인이자,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옥의 늦둥이 겸 차남[7]으로 태어난 남진은 부유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연극, 음악에 심취했다. 남진의 집안은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집에 자가용이 있었을 정도로 목포에서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는데 학생 때부터 닐 세다카, 폴 앵카 등의 팝송을 즐겨 불렀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불러 밴드 마스터에게 당시 최고 인기 가수 남일해의 곡을 만들었던 작곡가 한동훈을 소개받고, 그로부터 자신의 음악학원에 등록하고 연습생 생활을 할 것을 제의받는다. 이때 이미 남진은 영화배우가 되고픈 마음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한 상태였다. 그렇게 영화배우의 길을 꿈꿨던 그는 가수 연습생 겸 배우 지망생 생활을 시작한다. 불과 몇 개월 후인 1965년, 그는 첫 음반을 레코딩하게 된다. 데뷔곡은 한동훈이 작곡한 〈서울 푸레이보이〉. 스탠더드 팝을 연상시키는 곡이었다.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던 그는 방송 통폐합으로 상징되는 제5공화국 시절 슬럼프를 겪었으나, 민주화 이후 재기에 성공해 21세기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남진의 음악 인생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와 그대로 겹치는 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남진이지만, 막상 그의 음악 인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가수 남진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한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묻는다. “왜, 인제 와서 남진인가?”
아무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지만, 이미 수십 년 전 전성기를 지난 가수를 지금에야 다큐멘터리로 다룬다니 뭔가 석연치 않은 모양이다. 이는 전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남진에게 특별히 더 알아야 할 게 뭐가 남아있겠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가수 남진’ 인생
가수 남진의 인생은 우리 대중음악의 고전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는 점이 그렇고, 모두가 안다고 여기지만 대부분 제대로 모른다는 점 또한 그렇다. 또 한편으로 그의 인생은 식민지와 전쟁에 지나쳐버린 우리 대중음악사의 자료이다. 성장통에 아파하는 동안 차마 기록되지 못했던 중요한 역사가 그의 삶에 새겨졌다. 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잊힌 페이지를 마주할 수 있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불멸의 히트곡인 〈마음이 고와야지〉는 그를 단순히 트로트 가수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가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인정받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잘생긴 얼굴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방한 창법과 무대 액션에 당시 소녀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 후 〈그대여 변치 마오〉, 〈님과 함께〉 같은 대표곡으로 이어졌다.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니까!
남진의 도전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전성기 이후에도 남진은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9년 〈둥지〉에서부터 2005년 〈저리 가〉, 2008년 〈나야 나〉를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라이벌 나훈아의 신비주의 콘셉트와 대비된다. 2008년, 나훈아가 모종의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라이벌이던 두 사람의 활동은 더 큰 차이를 보인다. 남진은 2009년에 장윤정과 함께 남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듀엣 가요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본업 가수로서 지방 공연은 현재까지 쉬지 않고 이어가고 있으며, 성황리에 매진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가수 남진’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사라기보다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를 조명하면서 남진이 태풍의 눈처럼 대중음악을 이끌고 성장시켜가는 과정을 담았다. 최근 나훈아 은퇴 선언에 남진이 “저는 힘 날 때까지…”라고 말한 것처럼 영원한 대한민국 원조 오빠 남진은 영원한 오빠로 불릴 것이다.
[추천사]
“원조 오빠에서 영원한 오빠로”
데뷔 60주년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나다!
“내가 죽으면 가장 먼저 달려올 후배”- 원로 가수 쟈니리
“무명의 나를 살린 은인이자 롤모델”- 가수 설운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선구자”- 가수 장윤정
“남자가 봐도 정말 멋진 상남자”- 가수 박현빈
“인간 남진은 너무나 소탈해요.”- 50년 지기 팬 김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