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참혹하고 무자비하다. 으레 전쟁은 죄 없는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희생당한 사람은 점차 기억에서 잊힐 뿐이다. 하지만 인류는 어리석게도 전쟁을 반복한다.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이 지켜 낸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산다. 그럼에도 그 끔찍한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차츰 잊힌다.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억에서 멀리 도망가고 있다. 세계인들이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6·25전쟁을 미국에서는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잊힌 전쟁과 영웅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열심히 공부하던 꿈 많은 대학 1학년, 6·25전쟁의 발발은 저자가 누리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저자는 매 순간 새로운 운명을 선택해야 했다. 북한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부모 형제와 고향을 등지고 국군으로 참전하여 고향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했다. 자유주의 사회를 갈망했고, 엔지니어의 꿈을 위해 학업을 이어 가기 위해서였다. 국군으로 참전하여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도중에 안타깝게도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북한 출신의 국군이라는 것에 총살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면하고 종국에는 인민군 신분이 되어 총을 들게 된다. 자유를 찾아 먼 길을 떠났던 목숨 건 여정은 이대로 좌초되는 것인가. 새로운 운명을 위한 저자의 고뇌와 선택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은 6·25전쟁을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마치 전장에서 실제로 총을 들고 싸우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험악한 백두대간 산악지대에서의 전투로 극한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수색대원의 특별 임무, 혹한의 추위와 극심한 굶주림, 피로와 공포의 교차 속에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탄을 피하며 싸워야 하는 용사들의 생생한 모습과 서늘한 참상을 들려준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산화하여 이름 모를 계곡과 산자락에 묻힌 호국영령들을 떠올리게 한다.
남한과 북한에 씌워진 이념은 변함없이 세월만 무심하게 흘렀다. 우리는 참혹한 전쟁이 남긴 폐허의 구렁텅이 위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전쟁과 영웅들이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영웅들의 위대한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말을 다시금 마음에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