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대하는 몇 가지 자세
야생화를 만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야생에 피는 꽃이니 먼저 산이나 들로 찾아가야 하는데, 높고 험한 골짜기를 올라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발길 닿는 곳에서 꽃들이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꽃자리를 알기도 어렵고 꽃이 피는 알맞은 시기 역시 알기 어렵다. 꽃을 만나러 가는 일은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느 순간부터 꼭, 반드시, 어떤 꽃을 봐야 한다는 마음까지 비워버리고 그저 눈앞에 나타나는 꽃을, 최선을 다해 만나기로 한다. 꽃들의 뒷모습이 전해주는 지난겨울의 상처를 보고, 햇빛이 반짝이지 않아도 영원처럼 피어있는 꽃들을 고맙게 만난다. 크고 작은 꽃들을 사진 찍을 때 유지해야 할 거리를 생각하고, 지고 있는 꽃들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건넨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처럼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고 다짐도 한다. 생과 사를 다정하게 들춰주는 무덤가 꽃들에게 귀 기울이고,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한 것처럼 “네 장미에 책임이 있다”는 말의 무게도 알아듣는다. 죽음과도 같은 기다림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행복할 때는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해준다. 덕분에 꽃들이 전해주는 말에 귀 기울이다가 산을 내려올 때쯤이면 그만큼 가벼워진다. 마음이 조금은 여유를 얻어 돌아온다.
모든 꽃이 장미가 되려고 하면 봄은 그 사랑스러움을 잃어버릴 거예요
꽃은 끝이 없을 만큼 다양하다. 주변에서 늘 만나는 꽃도 많지만 전혀 새로운 꽃들도 많다. 그 꽃들은 꽃 자체로 완벽하다. 아무리 작은 꽃이어도 엉성하거나 대충 피지 않는다. 실은 그것이 신비다. 그 때문에도 꽃을 찬찬히 바라보면 마음이 떨린다. 하나의 꽃 안에서 우주를 만난다. 야생에 피어나는 생명체들의 여전히 무한한 놀라움 속에서 저자는 시인이 되고 싶어진다.
새처럼 노래하거나 천사처럼 날갯짓하고 있는 현호색, 아슬아슬 한 줄기로 서서 미풍에도 흔들리는 산해박, 죽음의 자리에서 뜻밖의 아름다움으로 생의 역설을 생각하게 하는 타래난초, 찬바람 불어오는 산자락에 샛노란 화관을 빙 두르고 피는 우유빛깔 너도바람꽃, 볼에 다나카를 바른 미얀마 소녀 같은 변산바람꽃, 다이애나 스펜서가 묻혀 있는 고적한 호숫가처럼 어떤 신비로운, 조금은 쓸쓸한 처연함까지 풍기며 공간을 독특한 세계로 편입시키는 깽깽이풀, 기도하는 사람처럼 고요히 머물다가 햇볕이 따뜻해질수록 얼굴을 들며 피어나는 얼레지, 씨앗에서 막 터져 나온 나비들처럼 경쾌한 새우난초, 원초의 생명력이 가득한 숲에서 댕그렁댕그렁 진주 알갱이를 흩뿌리는 분홍은방울꽃, 이슬람 사원과 비잔티움 모자이크의 푸른빛을 소환하는 반디지치, 깊은 산 침묵 속에 고고한 은수자처럼 머물러 피는 큰앵초, 바람이 아니어도 대롱대롱 흔들리는 선백미꽃, 너도 흔들리고 나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작은 꽃 병아리난초, 하얀 기둥으로부터 돋아난 얇은 잎과 둥글게 매달린 종 모양의 꽃과 꽃 속에 박혀있는 푸른 눈동자 같은 암술까지 볼수록 신비로운 나도수정초,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을 잃지 않는 색채로 더욱 짙고 풍요로운 찬가를 들려주는 금꿩의다리, 보잇한 빛 속에 새하얀 꽃들이 앙증맞은 호자덩굴꽃……. 저자가 전해주는 꽃들의 이야기로 세상이 더 다채로워지고 더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