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에요"
어제 둘째 아이 결이 한 말이다. 일곱 살 아이의 실없는 우스갯소리 같았는데, 머리에 맴돌아 계속 곱씹게 되니 나름 심오하다.
맞다. 웃어야 사람이다. (26쪽)
그런데, 그래도 좋았다. 습하고 끈적거리는 제주의 여름! 이것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으니까, 태평양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다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그리고 제주에서, 온 가족이 함께 사치스러운 여유 속에서 놀고 있었으니까.(73쪽)
원시림 같은 사시사철 푸른 난대림들이 얽히고설켜 자라는 땅에 양치식물들은 낮게 잎을 내어 퍼져 있었고 물기를 머금은 이끼들은 바위들을 푸르게 수 놓았다. 아이 주먹만 한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것을 나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선심 써 주는 척 한 뼘 앞으로 옮겨 주면서, 나의 작은 수고로 달팽이 이 녀석 한 시간의 수고를 덜어주었다며 혼자 기분 좋아하기도 했다.
나도 남에게 말 못 할 속사정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파안대소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라 생각하고 왠만하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더 행복해졌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어서 마음이 심란할 때는 엄마 품 같은 제주 섬 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제주 곳곳으로 난 길을 무작정 걸었다. 제주에는 걷기 좋은 길이 실핏줄처럼 뻗어있었다. 걷기는 다리를 곧게 하고 몸에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더불어 생각의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어김없이 발휘해 주었다. 내딛는 한걸음만큼 잡념은 사라지고 긍정의 밀물이 한걸음 몰려왔다. 이 느낌이 좋아서 올레길과 중산간의 길들을 혼자 타박타박 잘도 걸었다.
생각해 보니 가끔 나는 혼자였어야 했다. 드물게, 아니다. 자주,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피곤하면 잠을 자고 아프면 상처를 핥아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마 나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너덜너덜한 마흔살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219쪽)
중산간 길을 오가는 출퇴근길이 늘 새로웠어요. 길 위에서 시간여행을 한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계절의 흐름을 내 몸, 세포 곳곳, 시각, 청각, 촉각, 후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안개가 나직하게 몽환적으로 깔린 난드르 지천에 갯무꽃이 흐드러진 길 위를 달리면 콧노래가 절로 나와요. 유채꽃이 노랗게 번질 때면 마음에도 왠지 모를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냥 포근해져요. 신록이 넘치는 여름 길 역시 계절의 변화를 올올히 느끼게 해줬어요. 이 길 위로 느닷없이 꿩이 푸드득 날기도 하고요. 한라산 노루가 난드르를 겅중겅중 뛰는 모습에 ”하하핫~“ 감탄사와 함께 흥겨움 역시 껑충껑충 튀어 오르거든. 어떤 날은 스러지는 풍경에 넋을 잃고서는, 달리던 차를 멈출 수밖에 없어요. 갓길에 정차하고서, 석양이 물들이는 붉은 한라산을 사진에 담고 있노라면, 더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곤 했는데, 저절로 ”아! 살맛 난다“라고 감탄하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