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중 만난 많은 사람, 셀 수 없이 많은 계단, 꼬부랑길, 분재 같은 나무, 갖가지 모양의 바위, 억겁(億劫)의 세월 동안 산과 동무하며 지내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고사목, 불현듯 나타난 돼지 떼, 사이좋은 노루 부부(?), 오소리, 살모사, 사나운 들개 무리, 까만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던 산토끼 두 마리, 새벽녘 나무 사이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 거친 파도와 검푸른 바다 등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신비, 모두가 희망이고 자유였다.
티끌 하나도 가공하거나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땀 흘리며 정상에 올라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눈이나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함께 즐기고 싶었다. 겨울철 빙판 등산로에 꼬꾸라져 피투성이 된 얼굴, 상처 난 이마, 수없이 멍든 정강이, 골절된 손가락 등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많았지만, 어찌 자연이라는 큰 스승에게 배우고 익힌 겸손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영국의 저명한 산악인 ‘조지 말로리(1886~1924년)’는 “왜 산에 오르느냐?”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Because it’s there.” 즉,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산에서 생을 마감했다.
산이 필자에게 물었다.
겸손, 배려, 포용을 배우고 싶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