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개, 새, 풀, 꽃…
자연에서 하나둘 주워 모은 행복들
작품에서 수차례 등장하는 지명이 있다. 바로 ‘이기울’이다. 작가가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김포 용강리의 옛 지명이다. 소박한 마을이건만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기울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그 힘든 농사일을 할 때마다 진귀한 야생조류들의 지저귐으로 피곤함을 달래고, 계절마다 색다른 무늬로 다가오는 문수산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시 한 수가 나온다. 매달 초승과 그믐에 찾아오는 눈썹달을 바라보는 짜릿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
자연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는 작가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이가 있다면 바로 키우고 있는 청계靑鷄들이다. 그중에서도 까만 녀석과 흰 녀석이 마치 강아지처럼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보고 곧잘 따라 그 애들에게 ‘까미’와 ‘하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날마다 탐스러운 청란靑鸞을 낳아주는 까미에게 쌀 한 줌으로 보은하는 즐거움에 겨울철 얼어붙으려던 마음마저 포근해진다.
내 손으로 씨앗 넣은 농작물이 튼실하게 잘 자라주어 가을에 알차게 수확을 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자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제 몫을 다한 오이 넝쿨을 걷어내고 꼬부라진 오이를 잘 다듬어 김치 한 통을 담가 놓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은 풍요로울 수밖에. 자연에서 하나둘 주워 모은 작은 행복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을 버틸 힘이 되어 준다. 거저 얻은 행복이니 세상에 나눌 수밖에. 그리하여 작가는 다시금 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방법
언제나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는 자연과 종종 대비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한없이 베풀어주는 자연의 사랑을 받을 땐 천국 같은데, 지나가다 던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엔 곧장 지옥으로 곤두박질하게 된다. 죽고 못살 것 같이 친근한 이들과도 불현듯 멀어지기 일쑤다.
무정한 남편과 꼿꼿한 시모 앞에서 울음 삼키며 아이를 낳아 길러야 했던 젊은 날의 버거운 삶과 가슴에 쌓아둔 아픈 기억들은 차마 추억이라 이름 부르기도 고통스러울 정도다. 묵정밭을 옥토로 일궈내시느라 손발이 부르트고 허리 통증이 도져도 늘 침묵을 선택하셨던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사무친다. 어디 가족뿐이랴. 성당 최고의 봉사자로 손꼽히는 교우가 던진 날카로운 말이 칼이 되어 가슴에 꽂히는 바람에 우울증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거름 삼아 다시금 재기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주님께 기도하며 그저 인내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겹겹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가슴팍을 옥죄는 불쾌감도 차츰 녹아내리고, 산과 들에 푸른 새싹이 돋아나면 상처받은 내 영혼도 푸르고 밝게 발돋움할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행복을 찾는 비법이 아닐까.
자폐아에게 밥 한술 더 먹이려고 끼니마다 땀 뻘뻘 흘리는 봉사자의 얼굴에서 발견한 예수님, 핸드폰에 저장된 ‘남의 편’에서 ‘의’자를 하나 빼고 비로소 만난 ‘남편’, 막내며느리와 함께 두부 만들고 만두 빚는 풍경의 햇살, 다섯 여인들의 일탈과도 같은 짜릿한 일박 여행… 낙천적이고 소박한 삶에서도 우리는 위대한 감사의 순간을 길어 올릴 수 있다.
행복하기엔 역시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단내 풀풀 나는 제철 과일 잔뜩 심어놓은 이기울의 텃밭으로 지금 당장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