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로마의 테라스』를 통해 회화 장르를, 산문 『섹스와 공포』를 통해 로마의 성(姓) 문화를 탐구한 바 있는 키냐르는 이 책에서 평생 수집한 이 그림들을 섬세히 묶고 또 배치하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1장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그림은 디도와 아이네이아스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 아이네이아스 앞에 횃불을 밝히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 어린아이의 언어적 불능을 상기한다. 이 어린아이는 차츰차츰 그리스신화 속 신과 영웅들(‘악테온과 다이아나’ ‘마르스와 비너스’ ‘에로스와 프시케’ 등), 성서의 인물들(‘롯과 그의 딸들’ ‘노아와 그의 딸들’ ‘마리아 막달레나’ 등)으로 형상화되며 다양한 성적 욕망을 비추고는 후반부 장 ‘최후의 상’ ‘제4의 밤’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그리며 사라진다.
이들 그림과 동행하는 키냐르의 글은 단순히 그림의 시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 그림이 촉발하는 또다른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예컨대 연인이 각자 얼굴에 베일을 쓰고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마그리트의 〈연인들〉 도판과 이웃한 키냐르의 글은 이 그림에 대해 별다른 언급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성차(性差)가 유발하는 절대적인 이해 불가능성에 대해 탐구할 뿐이다(“우리 각자는 다른 성기를 소유함으로써만 유발되는 성적 체위, 육체적 생활, 심리적 태도 등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키냐르의 관심은 에로티시즘 그 너머로 확장된다. 이에 대해서는 ‘잠과 꿈’ ‘골고다’ ‘지옥들’ ‘세계의 기원’ ‘회화의 기원’ 등과 같은 장 제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키냐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론을 전개한다. 키냐르는 프리드리히 그림에서 나타나는 절대적 고독을 호퍼의 그림 속 ‘오브제 없음’과 연관 지으며 이들이 형상화하는 ‘비가시적 세계’의 정체를 탐구한다.
키냐르는 가시적인 것을 만드는 회화 예술의 근원에 비가시적인 것이 있으며, 이 비가시적인 것이 화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추동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키냐르는 (그 자체로는 볼 수 없는 것인) 어떤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현대의 화가와 환각을 그대로 동굴에 그리려고 했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을 동일시한다.
가시적인 것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 회화 장르에 접목하는 이 구도를 키냐르는 그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적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로티시즘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만든 것은 우리 부모의 성교 행위인데 우리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 장면을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적인 밤』은 이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가에게 그랬듯 이 불능이 모든 인간에게 꺼지지 않는 허기와 욕망을 자아낸다.
키냐르에게 회화라는 예술 장르와 에로티시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성적인 밤』 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