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의 본령을 “시대적 가치나 과제라는 공공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투쟁과 통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지고 지키려는 집단이나 권력을 쟁취하려는 집단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계층, 이념, 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투쟁하거나 연대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는 투쟁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행위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려고 하는 행위이며, 이와 같은 정치의 양면성이 정치의 본질이자 고유한 성질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 두 요소를 당연시하고, 특히 투쟁과 갈등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것은 그 후과를 사회가 감당해내야 한다. 통합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에 압축적이며 역동적인 변화와 발전을 보이면서, 그 이면에 수많은 갈등요소를 폭탄처럼 안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즉 이전의 사회적ㆍ정치적 갈등들이 미처 해소되지 못한 채 새로운 유형의 갈등들이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균열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 사회 통합에 대한 정치 영역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이 책은 그에 대한 역사적ㆍ이론적ㆍ실천적 모색을 위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2.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통합정치’에 대한 개념을 보다 풍성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인간 중심의 정치에 관한 역사가들의 관조와 정치사상가들의 담론을 탐색하였다. 다음으로 통합정치의 핵심적 기제인 정치적 다원주의와 협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정치문화, 정치제도, 정치리더십 등과 관련한 방안을 선진국가들과 한국의 비교를 통해 모색하였다. 마지막으로 G20 국가군 중 10개 국가에서 통합정치를 실천한 정치지도자의 사례 - 중국의 쑨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영국의 토니 블레어, 한국의 김대중,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브라질의 룰라 다시우바 - 분석을 통해 한국적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이처럼 저자의 목적은 단순히 ‘통합정치’를 개념화, 이론화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즉 저자가 모색하고 있는 통합정치의 개념이 학문적 측면에서나 실천적 측면에서 보다 의미있게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통합정치와 관련한 담론을 탐색하고, 통합정치의 실현 방안을 모색하며, 통합정치를 실천한 리더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도출한 통합정치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먼저 통합정치는 정치공동체의 으뜸가는 선(善)인 공공선을 추구하며,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 평등, 우애를 지향한다.
다음으로 통합정치는 투쟁과 통합이라는 두 축의 정치적 행동양식을 아우른다. 통합정치는 지난한 역사 과정에서 쟁취해 온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정치적ㆍ사회경제적 갈등과 분열을 협력, 공존, 연대 등과 같은 통합적 방식으로 해결해 온 일련의 경합과 협치의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통합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이라는 모토를 바탕으로 지속가능성과 실천성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관용적 시민문화와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반한 정치문화의 조성이 필요하고, 협의제 민주주의와 정치적 효능감을 위한 정치제도가 구비되어야 하며, 진실, 용기, 관용, 통찰과 같은 정치적 덕목을 디서플린(disciplin)한 정치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3.
‘협치’, ‘통합’이라는 단어가 한국 정치의 화두가 된 상황은, 한국 정치가 극심한 갈등과 대립의 상태라는 걸 나타내주는 반증이다. 특히 한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지역ㆍ이념ㆍ세대ㆍ계급ㆍ성별 등 몇몇 측면에서의 갈등과 분열상은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현실은 ‘통합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요구하며, 특히 정치행위자들의 소명의식과 역할,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다. 이 책의 역할 또한 통합정치의 실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