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란 미완의 존재여야 한다
홍세화 작가는 좋은 어른이 누구인가를 묻는 김민섭 작가의 질문에, 좋은 어른이란 미완의 존재여야 함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어른이란 완성된 존재여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어른에게는 끝없는 변화와 성숙이 필요하다. 우리가 굳이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자기 변화와 자기 성숙의 여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건 두말할 필요 없이 나의 현존재가 미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그 가능성이 열린다.
자신이 좋은 어른이라고, 이미 완성된 어른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러나 그런 이들 중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성취를 미화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나도 해냈으니 당신들도 해내야 한다며 “나때는 그러했다”라는 말을 전한다. 그러나 홍세화 작가는 사람이란 죽는 순간까지 완성될 수 없으며,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점과 부족한 점을 부단한 성찰을 통해 수정하거나 보충해가는 긴장을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결국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살피고 외출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거울과 함께 살아가는 자세가, 참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객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 가든 우리는 고객으로 존재한다. 슬프지만, 서로의 위계를 나누고 자신이 조금 더 높은 갑의 자리에 위치할 때, 완성된 어른으로 대접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홍세화 작가는 우리가 지금과 같은 괴물의 모습을 띄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신민교육이 극복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가 들어왔기 때문이고, 그래서 신민에서 시민이 되는 대신 고객, 소비자가 되고 말았다고 진단한다.
이원재 작가는 묻는다. 학교는 어떠한 곳이 되어야 하겠느냐고, 그리고 교사인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고. 홍세화 작가는 답한다. 우리는 신민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어야 하고 교사는 그런 교육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
홍세화 작가는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원재 작가의 말에 답한다. 유럽의 교사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라고. 그에 따르면 글쓰기는 사람을 즉자적 자아에서 대자적 자아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실상 우리의 생각은 거의 다 안개 속에 있고,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되짚어보게 하며 자신을 정교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원재 작가는 그런 그에게, 학생을 어깨로서 대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대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답한다. 글쓰기 피드백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물론 누가 자신을 찾아오든 몸을 돌려 정면으로 마주하겠다고. 결국 그렇게 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미완의 존재로서 좋은 어른의 길을 나아가겠다고.
추천사
홍세화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아버지의 서재에서였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퇴근하고 나면 자신의 방에서 늘 무언가를 읽었습니다. 언젠가 그의 책상 위에서 그가 읽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보았고, 몇 페이지 읽다가 곧 그만두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제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 사람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제대로 된 기억 속엔 없습니다. 어쩌면 그랬다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제가 쓴 〈대리사회〉라는 책에 추천사를 써 주었습니다. 남민전 사건 이후 파리에 망명한 그가 찾은 직업이 택시기사였고, 대학에서 나와 제가 찾은 일이 대리기사였으니까, 서로의 삶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제법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저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일산의 자택으로 고기를 들고 친구들과 찾아가면 함께 구워 먹었습니다. 좋은 와인이 있다며 내어 오기도 했고,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고, 음식을 다 먹고 나면 항상 직접 설거지를 하려 해서 우리가 제발 저희가 하겠다고 잡아끌어야 했습니다. 그는 나이와 관계없이 그 공간의 모두를 존중했습니다. 실로 그러했습니다.
삼겹살을 들고 처음 일산의 자택에 있는 그를 찾았을 때, 대한민국의 광장엔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른바 국정농단, 촛불시위, 대통령탄핵.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입이 있는 모두가 그에 대해 한 마디를 보탰습니다. 우리도 출간에 대한 축하와 이런저런 농담들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거기로 화제가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찾은 젊은 몇몇이 선생님의 말을 기대하며 그를 보던 그때, 그의 첫 마디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해야겠어요. 저 같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오늘 같은 날이 오게 된 거예요. 젊은 당신들에게 참 많이 미안해요.” 그때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고, 곧 모두가 선생님 그렇지 않아요 사과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했으나, 곧 우리는 그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고,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 어떤 어른도 우리에게 사과한 일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누군가를 찾아 악마화하고 비난하기에 바빴던 그때 홍세화 선생님은 제게 유일한 어른이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젊은 사람들의 말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줍게 웃고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왜 그런지, ‘수줍다’라는 표현이 그처럼 어울리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는 언제나 소년의 얼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잃어갑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소년의 얼굴로 시작한 이들이 왜 저런 얼굴을 하게 되었나, 하고 실망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홍세화 선생님은 그 얼굴을 지켜나갔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이 작고하기 3일 전, 간병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민섭아,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네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려다가, 그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왠지 지금 꼭 물어야 할 것 같아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누구에게도 물은 일이 없지만, 선생님께서는 꼭 여쭙고 싶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문장, 아니 한 단어로 말씀해 주셔도 좋아요.” 그는 길게 답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정갈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해 주었습니다. “그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나는,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똘레랑스, 유럽식 관용과 배려라는 그 단어를 알리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저에게/우리에게 전한 단어는 ‘겸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곁에서 오래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애써 참아온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선생님의 앞에서 한참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답하고 싶은데, 그러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민섭이랑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라고 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네가 울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어. 밖에서 울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서, 선생님 저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간신히 울음을 참고 말씀드리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선생님과 작별했습니다.
수줍은 소년의 얼굴을 한, 단 한 순간도 변한 일이 없는,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어른을 이제 보냅니다. 그의 삶의 좌표는 너무나 명확했고, 그는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건넨 하나의 단어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선생님, 정말 멋있었어요, 저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그럴 수 없음이 무척 서글픕니다.
이 책은 작년 그와 함께 했던 “교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대담을 정리한 것입니다. 굳이 교사라는 특정 직업이 들어갔던 것은 대담에 참여한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의 직업이 교사이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합니까?”라고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에 화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말했습니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민이나 고객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홍세화 선생님의 마지막 문병을 다녀온 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 겸손이라는 단어 하나만 직접 받아줄 수 있겠느냐고. 몇 시간 후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이 왔습니다. 이 책의 면지에 들어간 선생님의 친필, 그것입니다. 그리고 2일 후,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이 책은 선생님께 보내는 김민섭의, 이원재의, 그리고 제가 아는 모두가 보내는 추모입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께서 남긴 겸손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간직해 온 다정이라는 단어 곁에 겸손을 두겠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민섭_정미소 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