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버리고 다시 무언가를 제자리에 가져다둠으로써
되찾는 일상의 여백
“이제 내게 없는 것, 스스로 그만두었거나, 나를 떠나간 것을 떠올리며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채워나갔다. 할 일로 빼곡한 생활의 숨겨진 여백이 회복될 것을 내심 기대하면서. 그러나 이 목록은 첫 마음과는 다르게, 내가 지켜내고 있거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떠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무언가 남겨져 있고,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것이 나를 밀어내는 작은 실랑이의 현장이었다.”
(본문 5-6쪽)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은 의외로 쉽게 확정되지 못한다. 한 번의 작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목록은 자꾸만 수정된다. 의도치 않게 그만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만두지 못한 일이 반복해 생겨났으므로. 서윤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은 어느새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33가지 목록은 불완전하다. 대부분 결심의 변화 속에서 채택된 것들이다. 그만둘 수 있다고 믿었던 일들은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릴 때마다 재평가되고, 그는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온 일들을 간편하게 정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목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코 완벽한 계획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유연하게 돌볼 수 있는 탄력성을 터득하는 일임을 깨우친다.
“생활을 돌보는 것은 나의 여분을 정확히 확보하는 것.” 그는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며 숨어 있는 생활의 여백을 되찾는다. 이 여백에서 다시 잘 살아내고 싶은 용기를,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을 공글릴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가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통해 생활의 균형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오늘보다 내일을 잘 살아내고 싶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그러니 함께 이 목록을 작성해봐도 좋지 않을까.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줄 아는 삶의 기술
서윤후는 〈깨지지 않기로 한 약속〉(본문 163쪽)에서 오키나와 한복판에서 유리 공예품이 깨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깨진 유리 파편이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와 쏟아지는 햇빛 속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잘 만들어진 공예품을 볼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깨지고 나서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니.” 그는 이 강렬한 기억을 담아 〈유리물산〉이라는 시를 쓰며 자신의 생활을 떠올린다.
깨지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은 삶에 대한 어리석은 아집이라고 서윤후는 말한다. 그는 생각을 돌이켜 삶의 안간힘을 내려놓는 미덕을 설명한다. 미완성의 아름다움이 우리 삶 속에 있음을 길어올린다.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유리 공예품일 땐 지나치고야 말았던 완성된 세계보다, 뜻밖의 일로 자신의 형체를 잃고서 아름다움을 발휘하게 된 미완성의 순간이 더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본문 166쪽)
서윤후는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 실패의 경험을 기쁘게 끌어안는다. 깨진 유리 조각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생활을 기껍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생활을 긍정하며, 안간힘을 다하던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의 생활이라는 풍경을 환히 비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