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청년의 유쾌한 홀로서기
박관찬 씨는 시청각장애인입니다.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립니다. 그런데 첼로를 켭니다. 독주회까지 열었습니다. 심장과 가장 가깝다는 악기의 진동을 몸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그 뿐인가요? 직접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면서 장애 매체 기자로 일하고, 칼럼을 쓰고,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연을 합니다. 매일 헬스클럽에 다니고, 검도를 배우고, 하프마라톤을 뜁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살려니 일상이 곧 좌충우돌입니다.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엉뚱한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말이 좋아 그렇지 좌우로 충돌하는 삶이 편할 리 없습니다. 장애를 원망하고 주저앉을 법도 한데, 그는 삶에 감사하고 유쾌하게 삶을 받아들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나동그라지면 잠시 숨을 고르고 씩 웃으며 다시 일어나 또 도전합니다. 그러니 어디선가는 길이 열립니다. 이 책은 이렇게 길을 열어온 한 장애인 청년의 가슴 뭉클한 개인사입니다.
홀로서기는 홀로 이룬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박관찬 씨의 홀로서기 역시 수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모님과 가족의 헌신과 지원이 있었고,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대해주고 삶의 고비마다 손을 잡아준 선생님, 아무도 선뜻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시청각장애인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첼로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일처럼 걱정해준 친구들, 늦은 시간 첼로를 연습하는 사람이 장애인임을 알고 마음을 열어준 이웃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선뜻 나서 도와준 속기사와 활동지원인 여러분이 있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연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치열한 당사자성이 그려낸 장애의 풍경
당사자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진정 더불어 사는 세상의 문을 열어 젖히려면 당사자들의 일차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박관찬 씨는 천진난만하다고 할 정도로 순수한 청년이지만, 법대를 나와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장애정책 연구원으로 일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성을 갖춘 지식인이기도 합니다. 이 책 곳곳에서 그는 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겪는 무수한 어려움을 드러냅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그러하듯, 우리 사회의 허점을 짚는 그의 태도 역시 밝고 건강합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각장애인도 버스 번호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세상, 장애인도 사생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본인 인증이 가능한 세상, 장기적 또는 영구적 장애를 겪는 사람이 국가 주관 시험을 칠 때마다 진단서를 떼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그의 삶이, 그의 경험이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많은 분께 영감을 주고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