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의 한 분야의 음성학/음운론 전공자인 내가 제주 중첩어라는 다소 뜻밖의 주제로 책을 쓰게 된 데는, 2009년 1년간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박사후 과정 프로그램으로 방문했던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언어학과의 Kenstowich 교수님과의 만남이 다소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언어 운율에 대하여 능통한 교수님도 제주 방언에 대하여는 단지 "한국어의 한 방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고, 서울 한국어에 비하여 특별한 점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고향이 제주도라서 제주어는 서울 한국어와는 달리 독특하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는 당시 제주 방언 연구 결과들이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미흡함이 원인으로 여겨졌다.
박사후 과정을 통하여 나의 고향인 제주어 연구는 결국은 제주 사람의 몫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 이후 약 20여 년간에 걸친 제주어에 대한 본인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제주어를 표준어인 서울 한국어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언어들과 비교함으로써 독립된 위상을 가진 제주어를 음운론적 음성학적인 과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다루고자 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흠을 보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서술된 제주어에 대한 지식의 상당 부분은 논문이나 책으로만 이해된 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낸 이유는 제주도는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향이고, 출향인으로서 빚을 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년을 몇 년 남겨둔 시점에 이 책은 언제나 잊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빚 변제의 의미를 지닌다. 비록 고향을 떠올리면 성장 과정에서 경험했던 쓰디쓴 고통만이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고향이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며 이제 나도 나름 고향을 위하여 기여를 했다는 자기 만족감이 크다. 이 책은 고스란히 어머니 延州 玄씨 仁生(1927~2017,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2리) 님께 바친다. 여기에 수록된 상당한 수의 중첩어 자료 출처는 이 분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