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 건축물 안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고 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창문을 열면 다른 집의 창문이 시야를 가로막기 일쑤이고, 설사 고층건물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 한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의 집합일 뿐인 경관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자연 경관을 만끽하려면 집을 나서야 하고, 그리고 가능한 한 집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완전한 건축이란, 건축물과 그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뜰과 동산이 하나로 융합된 것이다. 이는 이 책의 필자 주남철 교수가 한국 건축 연구를 시작한 이래 40년 넘게 견지해 온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도시의 건축은 불완전하다. 뜰과 동산이라 할 만한 것은 너무나 먼곳에 있고, 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인공적인 조경으로 정원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한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단순한 답사 기록이나 정원을 이루는 건축 구조에 관한 풀이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본래의 자연을 마음에 가져와 즐기는 차경借景을 정원 꾸미기의 으뜸으로 삼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정원이 자연을 빌려온 것임을 아는 것이 이 책의 더 중요한 목표이다.
일단 터를 잡으면 정자나 누각 등의 내부 공간을 만든다. 정원의 구성 요소들을 하나하나 따져 가다 보면 진정한 의미의 정원은, 설사 인공적인 꾸밈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이 그 모습 그대로인 곳에서 구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적인 꾸밈이 자연과 어떻게 합일되는지는 ‘제4편 정원의 여러 모습’에서 상세히 기술하였다. 궁궐, 관아와 객사, 학교 건축, 사찰, 민가 등의 정원은 언뜻 보기에 복잡한 건축물과 구성물 들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바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비움’이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광한루를 보라. 비어 있어야만 만 가지 경관을 다 끌어들일 수 있다 하여 아래층에 방을 두지 않고 온돌방의 사방을 모두 개방할 수 있도록 지었다. 최소의 구조로 경관을 최대한 담은 예는 도산서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형에 따라 건물의 배치를 달리하기도 하고(강릉향교, 영천향교), 좁은 공간에는 하늘을 담을 수 있는 물을 놓아 공간을 확장시키고(석련지石蓮池, 물확, 우물), 수평적인 공간에 수직적인 시각 요소를 첨가하면서(굴뚝, 담장, 나무), 정원은 저마다 특색 있는 꼴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정원을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궁궐이다. 조선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물론 고구려 안학궁과 대성산성, 백제 웅진성, 임류각, 사비성, 궁궐, 신라 궁실 등의 옛 모습은 도면과 터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창덕궁 후원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저자는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후원의 구성요소와 크고 작은 풍광을 살핀다. 부용정의 기단, 계단, 툇마루, 난간, 천장, 처마, 지붕의 재료와 모양 등 그 세부를 낱낱이 아는 것은 큰 그림을 완상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이 책에서도 유효하다.
관아와 객사, 학교 건축, 사찰의 정원을 둘러보고 나면 비로소 민가의 정원에 다다르게 된다. 정원을 꾸밀 때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궁궐 등에 비하면 민가나 별서는 주인의 개성을 한껏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좀더 흥미롭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방지方池와 조산造山을 확인하려거든 해남 윤고산고택에 들러라. 연엽蓮葉 모양의 석련지를 감상하고 싶다면 경주 최부잣집을 방문하면 된다. 숫기와를 마주 얹어 만든 바람구멍으로 담장 밖을 보고 싶다면 월성 손동만씨가옥의 사랑마당에 들어서라. 사랑방에 불을 지필 때 마당에 운해를 이루는 각별한 공간정서를 만끽하려면 아산 건재고택으로 가야 한다. 온돌방에 앉아 열린 창으로 동산 자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는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이 제격이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는 담양 명옥헌 각자 바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정원》의 탁월함은 이 모든 풍광과 꾸밈들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책 전체를 통틀어 무려 500컷이 넘는 사진들은, 모두 저자가 직접 찍은 것으로, 각 정원에 대한 저자의 묘사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증명한다.